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로는 ‘김치(Kimchi)’, ‘온돌(Ondol)’ 그리고 ‘빨리빨리(ppalli ppalli)’ 등이 있다. 모두다 한국 고유의 특징을 가진 낱말인데 특히 ‘빨리빨리’는 한국인들의 급한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는 음식점에 가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또 식사시간도 10분 안에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우리나라 빨리빨리 문화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더군다나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계산서부터 가져 오는 나라는 세상 어디를 가 봐도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문화로 인한 우리사회의 부작용은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이 문화는 더 이상 고쳐야 할 단점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국가브랜드 관련 여론조사에서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이미지와 관련하여 ‘근면성’과 더불어 ‘빨리빨리’를 꼽았다고 한다. 한국인 특유의 뜨거운 열정과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굳은 의지가 담겨있는 빨리빨리 문화는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 초고속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이를 기반으로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필자는 여기서 빨리빨리 문화의 장점과 단점을 언급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경제규모에 맞게 빨리빨리 문화의 ‘속도조절’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초고속 성장으로 경제규모가 많이 커졌으며 현재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래서 60-70년대의 한국을 20대 청년기로 비유한다면 지금은 40대 중년기로 볼 수 있다. 마치 40대 가장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면서 경제적으로도 한층 여유 있는 삶을 누리고 있는 모습으로 연상할 수 있다.
20대 청년과 40대 중년이 해외여행을 한다고 가정해보면 이해가 더 쉽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20대 대학생들은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많이 떠났다. 대개는 여행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호텔이나 유스호스텔 대신에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잠을 청했고 또 가능한 많은 곳을 관광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반면 40대 가장이 가족들과 함께 하는 해외여행은 어떨까. 20대 대학생들은 여행 도중에 몸이 피곤하고 어디가 조금 아프더라도 대개는 여행을 계속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40대의 경우에는 여행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안전과 건강이 우선이다. 만약 여행 도중 아이가 아플 경우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경제규모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커졌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어느 한 분야에 탈이 생기면 이는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국가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일컬어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로 비유하면서 긍정적인 측면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는 앞으로 10년, 20년 이후로도 계속 지속될 순 없을 거라 본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한국사회가 느끼는 피로는 계속 누적될 것이며 이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선진국들과 미국을 여행하다보면 길거리에서 뛰어가는 사람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그런 모습에서 삶의 여유를 느낀다. 우리나라 생활수준은 아직까지 이들 국가들과 비교할 순 없지만, 지난 2011년 3월 한국은행은 2010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 759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 서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빨리빨리 문화를 계속 유지하기보다는 빨리를 하나 뺀 ‘빨리 문화’로 옮겨가야 한다고 본다. 물론 빨리 문화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향후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된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Slowly but Surely’ 문화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즉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확실하게 가는 문화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는, ‘Slowly but Surely’를 목표로 하면서 빨리를 하나 뺀 ‘빨리 문화’를 정착하는 것이 어떨까?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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