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8월 말 CEO 자리에서 물러난 지 불과 6주 만이다. 당시 그는 “애플의 CEO로서의 의무와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날이 온다면, 내가 먼저 여러분에게 알리겠다는 말을 나는 늘 해왔다. 불행히도, 그날이 왔다”고 서면으로 발표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가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우리에게 알릴 수 없는 날이 왔다. 2004년 췌장암 수술 후 7년 여, 그의 몸에서 끝내 물러나지 않고 둥지를 튼 암의 합병증이 그의 숨을 거둬갔다. 56세의 짧은, 그러나 인류에게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선사하고 떠난 결실 많은 생애였다.
스티브 잡스의 죽음이 전 세계 남녀노소의 뉴스가 되고 있다. 뉴스에 무관심한 어린 세대까지 그의 죽음을 알고 슬퍼하는 것은 바로 그가 우리 손에 남긴 유산 덕분이다. 뉴스가 인터넷을 타고, 아이폰, 아이패드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개인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면 … 결국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그가 일궈낸 혁신의 과실을 나눠먹고 있다. 애도의 물결이 범상치 않은 배경이다.
그의 죽음 앞에서 삶을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벌거벗은 몸 하나로 이 세상에 오는데 세상을 떠날 때 남기는 흔적은 왜 이렇게 천차만별일까. 어떤 사람은 인류의 삶을 바꾸고 어떤 사람은 풀 한포기 돋아났다 스러지듯 흔적이 없다. 잡목들 우거진 숲 가운데서 홀로 우뚝 솟는 나무의 비결은 무엇일까.
베스트셀러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이런 탁월한 사람들을 ‘아웃라이어’라고 부르면서 그 비결로 재능, 기회, 그리고 반복적 단련/연습을 꼽았다. 상수리나무가 월등하게 크게 자라려면 우선 도토리가 실해야 함은 물론이다. 기본적으로 재능이 필요하다.
이어 도토리에서 난 싹이 잘 자라려면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주위에 햇볕을 가로막는 나무가 없어야 하고, 토양이 비옥해야 하며, 벌목꾼이 중간에 잘라내는 불운도 없어야 한다. 한마디로 운이다. 재능을 길러내기 좋은 환경·기회를 갖는 행운이다.
넉넉지 않은 양부모 밑에서 자란 잡스에게도 행운은 있었다. 지난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그는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일찌감치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실리콘 밸리에서 자란 것이 행운이었다. 전자기기에 푹 빠진 엔지니어들이 많이 살던 동네에서 그는 어려서부터 전자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8학년 때는 전자기기 조립 제품에 부품 하나가 빠진 걸 알고는 제조사인 휼렛패커드의 공동창업자 윌리엄 패커드에게 전화를 한 일도 있었다. 패커드는 이 당돌한 소년과 20분이나 통화를 한 후 부품을 챙겨주고 여름 인턴자리까지 제안했었다.
이렇게 시작된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은 컴퓨터로 이어지며 그의 일생의 밑그림이 되었다.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은 글래드웰의 세 번째 조건을 만족시킨다. 글래드웰은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 수준이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주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잡스도 “탁월한 일을 해내는 유일한 길은 그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아웃라이어의 조건이라면 잡스는 거기서 한걸음을 더 나아간다. 기존의 생각을 뛰어 넘는 새로운 발상이다. ‘다른 생각’이다.
예를 들면 매킨토시를 내놓은 1984년, 그는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서 떨어지지 않고, 각 가정마다 컴퓨터가 두 대씩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의 예언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그의 일생은 번득이는 ‘다른 생각들’을 현실로 구체화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이고 그 길을 그는 집념과 신념, 까탈스런 완벽주의로 한순간도 느슨해짐 없이 추구해 나갔다.
그런 치열한 삶의 원동력으로 그는 ‘죽음’을 꼽았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그래도 여전히 오늘 하려던 일을 하고 싶을까?”라는 물음을 그는 매일 아침 자신에게 던졌다고 했다.
죽음을 생각하며, 내면의 소리를 따라 살았던 그는 죽고, 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남의 생각·시선에 떠밀려 남의 삶을 사는 건 아닌가.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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