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기척을 내며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다. 창밖의 플라타너스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가끔 살랑이며 부는 바람은 갈색으로 바랜 잎만 골라 하나씩 젖은 땅으로 떨어뜨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리는 비가 이젠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드라이브 웨이에 오토바이가 비를 맞고 서 있기 때문이다. 대문 앞에 서서 아들을 학교에 데려주겠다고 고집했다. 젖어 미끄러운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비를 맞으며 달릴까봐 우려가 되어서였다. 오전 7시 반에 집을 나서서 아들을 캠퍼스 강의실 앞에 내려주고 돌아오니 9시가 되었다.
3학년이 되니 아들은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하였다. 집에서 학교까지 트래픽이 없어도 30분 이상 걸린다. 주차하고 강의실까지 걸어가면 적어도 1시간 반 이상 걸리니 그냥 기숙사에 있으면서 시간을 아껴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었다.
기숙사비도 절약하고, 트래픽을 피하여 시간도 아끼고, 주차비도 들지 않고, 강의실마다 바로 앞에 항상 주차공간이 있고, 개스비도 거의 들지 않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아들은 말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다니면 된다고 제안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듯 했다. 한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꿈에라도 생각지 못한 일을 아들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내 놓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미 기숙사에 있을 때 중고 기백 달러짜리 오토바이를 사서 여기저기 다닐 일이 있을 때 조금씩 타고 다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일주하면서 민중의 삶을 자세히 관찰한 후 학업을 포기하고 혁명가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서술한 책이다.
또 다른 책으로 로버트 피어시그가 열한 살 배기 아들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미국 대륙을 가로 지으며 깨달은, 생의 철학적 탐구를 기술한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훑어본 기억이 있다.
그런 책들을 읽을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이 주변의 갖가지 자연과 피부가 맞닿는 생생한 체험을 하는 낭만적이며, 모험적이며, 대단히 멋진 것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나의 아들이 오토바이를 교통수단으로 쓰겠다고 말하니 천하에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았다.
반대만 한다고 다 자란 아들이 자기 고집을 철회할 것이 아니기에 인터넷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것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사고가 나면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크게 다친다는 심각한 단점이 있다. 장점은 개스가 적게 든다, 개스가 적게 드니 대기오염도가 자동차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자동차와 부딪혀 사고가 나도 자동차를 탄 사람과 차의 손상은 극히 미미하니 보험료가 싸다, 오토바이는 카풀레인을 달리는 것이 허용된다, 자동차를 대신하니 도로의 트래픽을 줄인다, 교통경찰이 오토바이는 절대 잡지 않는다, 날씨가 화창한 캘리포니아는 바이커의 천국이다 등등.
특히 요즘처럼 심각한 불황이 계속 될 때는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개스비 절약, 보험료 절약, 시간절약, 환경 오염도를 줄이는 것이기에 적극 권장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저기 바이커들의 블로그를 보니 가난한 젊은 가장들이 돈을 아끼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 경우도 제법 있었다.
트래픽이 심해 차가 정체되었을 때 오토바이가 차선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휙휙 지나갈 때는 얄미웠었다. 하지만 결코 째려볼 사안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지난 여름방학 때 토요일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아들은 조금 더 나은 중고 오토바이를 샀다.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아들이 좋아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해 해내는 것에는 부모라도 질 수 밖에 없다.
지금 내리는 이 비가 개인 후에는 하늘은 맑고 푸르고 높아질 것이다. 깨끗하고 투명한 공기를 유리병에 담아 두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는 며칠 지나 어느새 매연에 휩싸여 하늘과 공기가 부옇게 변할 때를 생각한다. 오토바이는 공기를 덜 오염시키는 장점이 있으니 바이커를 흘기며 쳐다보지 말기를 당부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엾은, 기도하는 엄마이다.
윤선옥 / 동아서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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