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겨울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우연히 브랑쿠시의 작품을 보게 되어 반가움에 기뻤던 기억이 난다.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브랑쿠시(루마니아어: 콘스탄틴 브른쿠쉬, Constantin Brancusi, 1876-1957)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로댕과 브랑쿠시는 동시대의 인물로 세계적인 천재 조각가이다.
브랑쿠시는 1902년 루마니아를 떠나 뮌헨 취리히 등을 거친 후 1904년 파리에 있는 미술학교(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였다. 2년 후 학교를 중퇴한 그는 한동안 로댕의 화실에서 작업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큰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는 아무 것도 자랄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채 로댕의 요청을 뿌리치고 그곳을 떠난다.
브랑쿠시는 세계 조각예술사에서 민속예술을 현대 조각예술에 도입한 최초의 작가였다. 그는 기존의 민속예술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생한 경험을 작품 속에 표현하였으며, 여러 가지 주제의 다양한 작품들을 창작하기 보다는 항상 어떤 하나의 주제로 되돌아가곤 했다. 예를 들어 브랑쿠시의 대표작 <무한의 기둥>은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19년이 걸렸으며 새(bird)를 주제로 하는 작품은 무려 28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브랑쿠시의 작품에서 비상(飛上)과 관련한 테마는 ‘새’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작품에서 잘 표현되어 있는데 <초자연적인 새>(Măiastra)와 관련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초자연적인 새’가 거만한 움직임이나 교만함 혹은 도전적인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자기 머리를 들기를 원했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는데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노력한 이후에야 비로소 도약하는 비상을 통합적인 움직임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철제 모듈 17개로 이루어진 29m 높이의 <무한의 기둥>(The Endless Column)은 <침묵의 탁자>(The Table of Silence), <키스의 문>(The Gate of the Kiss)과 함께 루마니아의 트르구-지우(Targu-Jiu) 시 공원 내에 전시되어 있다. 종교학, 신학 분야에서 20세기 최고의 권위자인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이 기둥을 ‘세상의 중심축(Axis mundi)’라고 명명하였다.
브랑쿠시의 모든 작품에서 나타나는 주제인 완벽함의 추구는 무한의 기둥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의 모티프는 루마니아 민속예술, 즉 하늘을 지지하는 기둥이 존재한다는 고대 루마니아인들의 믿음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하늘과 대지 사이의 ‘연결’을 의미하고 있다.
브랑쿠시는 무한의 기둥의 형태를 어떻게 만들지 오랜 세월 동안 고심하였다. 이유인 즉 자신이 원했던 완벽한 형태가 ‘상승(上昇)’과 ‘비상(飛上)’ 그리고 ‘초월(超越)’의 상징성을 모두 통합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브랑쿠시가 무한의 기둥을 만드는데 있어 순수한 형태가 아닌 영원으로 반복되는 장사방(長斜方, rhomboidal shape)의 형태를 택함으로써 상승의 상징성을 분명하게 표현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표현되어 있는 비상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일생동안 비상의 본질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않았다... 비상, 얼마나 큰 기쁨인가.” 이처럼 브랑쿠시 작품에서 표현되어 있는 비상의 의미는 행복 혹은 기쁨이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서 그는 상승, 초월 그리고 인간의 조건을 벗어남을 상징화했으며 또한 비상은 고통, 어려움의 파괴 그리고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항상 비상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에 몰두했던 브랑쿠시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재료인 돌을 즉 무게의 원형(archetype)을 사용함으로써 비상을 설명하려 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무거움(돌)에 가벼움(비상)이 표현되어 있다. 결국 브랑쿠시는 라틴어로 ‘모순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라는 개념을 자신의 작품에서 완성시켰는데, 같은 물질(돌 조각품)에서 비상과 그것의 반대 개념인 무거움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조각예술의 일대 혁신을 가져온 브랑쿠시의 작품을 보면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미를 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한 마무리를 통해서 표면의 광택을 중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조각술로 인해 브랑쿠시는 현대 조각이 로댕을 넘어 추상으로 나아가게 한 선구자가 되었다.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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