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오는 전철역 안에서 두 남녀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요즘 대부분의 미국인들 중 천달러를 저축해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내용의 얘기였다.사실 신문에 나온 기사에서도 어떤 중산층의 부부가 동시에 직업을 잃게 되자 저축은 커녕 식비도 모자라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푸드 스탬프를 신청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겉으론 중산층인데 속으론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였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인간들은 너무도 이기적이어서 자신들이 그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남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건강한 사람들이 병에 걸려 아픈 사람들을 이해 못하듯 아니 부자들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자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불과 몇년전만 해도 한때는 나도 밀리네어라고 부를수가 있었는데, 주식에 투자했던 돈이 몇년만에 반으로 쪼그라 들었고 그렇게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나는 한번 해병이 영원한 해병이듯 한번 밀리네어는 영원히 밀리네어로 가는줄 알았다.생각해 보면 돈에 대해서 나는 너무도 무식했고 나이브했다.
2003년 남편이 은퇴한후 몇년간은 거의 이십퍼센트씩 한해에 벌어들여서 우리 부부는 일년에 몇번씩 해외 여행을 하는둥 그야말로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녔다.한번은 같은 교회에 다녔던 한 여집사가 내게 물었다.한번 크루스를 탈려면 돈이 얼마나 드느냐고.그때 나는 주저없이 대답했다.일주일 정도 멕시코를 가는데 부부가 가면 약 이천불 정도면 가능하다고,그랬더니 그녀는 자기에겐 이천불이 없다고,자기 일생에 이천불의 여유 돈은 한번도 없었다고.나는 그때 머리통을 한대 세게 맞은것 처럼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렇게 말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도 젊었을때 아이들을 넷씩 키우던 그때는 이천불은 커녕 천불이 없었던 적이 많았다.그런데 이제 좀 돈이 있다고 지난날의 없었던 때를 다 잊어버리고 남의 생각은 커녕 아픈데를 건드린 격이 되어서 후회도 되고 많은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아랫층과 이층이 똑같은 모양으로 지은 듀플렉스가 많다.딸애네는 이층에 살고 아랫층은 쟌과 폴라,또 그들의 두아이들이 산다.그들은 이삼년전만 하더라도 몇백명의 사원들을 거느린 건축회사를 소유한 소위 잘나가던 부유층이었다.그런데 부동산 불경기가 닥치면서 갑자기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해버렸다.이제는 모게지 페이먼트도 폴라가 가지고 있는 패물들을 처분해서 근근히 버티고 있다고 한다.그들이 잘나갈때 집에는 매일 출근하는 가정부와 두마리의 개들을 큰 밴에 싣고 가까운 공원으로 개 운동을 시키던 개보기까지 있었다.나는 매일 부유층이 사는 동네를 돌면서 개들만 돌보는 덕시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당시 폴라는 한달 용돈으로 이만불 이상을 썼다고 들었다.한번은 일곱살짜리 딸 벨라를 위해 구두 한켤레를 육백불을 주고 샀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한때 우리 딸은 그런 그녀를 선망한적이 있었다.그런데 몇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딸애를 부러워할 처지로 바뀌고 말았다.이래서 인생은 흥미롭고 한치의 앞날도 알수가 없어 인생역전이란 말이 생겼나보다.
가난하던 사람이 부자가 되면 보는 사람도 신이 나지만 잘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몰락했을땐 무어라고 위로할 말이 없다.폴라는 그후 두어번 자살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그녀의 두번째 자살 시도가 실패로 끝났을때 한때는 그들의 비서였던 여자가 한마디 했다."다음번 또 자살을 시도하면 그때는 꼭 성공하길 바랜다고,왜냐하면 이제는 보험도 없으니까"라고
그 칼날 같던 비수의 말 한마디가 누구의 가슴을 찔렀을까를 생각하니 내 가슴도 서늘해 진다.한번은 그 집 남자인 죤이 개스비도 없다고 해서 사위가 돈 몇십불을 주었다고 들었다.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늘다 보면 홈리스가 되는 것도 잠깐이다 싶다.또 미국이나 한국이나 노후 대책이 없는 노인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도 들었다.이럴때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것 같다.
내 친구 중에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고 그야말로 죽지 못해 지난 몇년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그 친구는 혼자 살기엔 좀 크다 싶은 집을 지금도 혼자 지키고 있는데 그녀 말이 자신은 좀 못나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다고,그말은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페이먼트 없이 살수가 있어서 오히려 잘된 일이다라는 말이다.
젊어서는 한군데 붙박이로 산것이 답답해 보였는지 몰라도 그런 친구들은 늙어서 모게지 없이 편하게 살고 있다.또 웬만한 집이면 적어도 베이 아리아에서는 해프 밀리언은 나간다.이제 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한군데 오래 붙박이로 살라고,그래야 끝이 있다고.그렇게 말하는 나는 너무 이사를 많이 다녔던 젊은 날의 내가 은근히 못마땅하고 후회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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