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6년 남겨놓고 대학에서 가르치려고 휴직을 하고 한국엘 갔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연구실 문에 써 붙였다: Welcome to my nest. Step in with a big smile if you can work like you don’t need money, love like you have never been hurt, dance like no one is watching(제 둥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음 세 가지를 하실 수 있다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십시오. 만일 당신이 돈이 필요 없는 사람처럼 일할 수 있다면, 상처를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아무도 보지 않는 듯이 춤을 출 수 있다면). 그러나 영어로 써 붙인 게 탈이었는지 별로 반응이 적었다.
연구실 문에 써 붙인 이 글은 자유인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한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실천 강령 같은 것이었다. 먼저“돈이 필요 없는 사람처럼 일한다”는 말은 자신과 가족에게 무책임하게 살자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두어 가지의 깊은 뜻이 들어있다고 하겠다.
첫째로 무엇을 하든지 충성과 헌신으로 일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충성이나 헌신은 어리석은 사람만이 먹는 밥이나, 무능력자에게만 해당되는 말로 전락해버렸다. 충성과 헌신은 더 이상 인생이라는 건축물을 버티는 기둥이 아니라 경쟁 속에서 몸부림치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이는 마치 맹수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노골적인 약육강식을 행동원칙으로 삼는 사회로서 무엇을 하든지, 합법이나 불법이나, 윤리적이나 비윤리적이나, 충성이나 배반이나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가치관이 팽배한 결과이다. 노년의 사람들에게 자기파멸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책임이 있다.
둘째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극단적 물질주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물질제일주의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은 그 안에 자멸의 불씨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도, 존엄성도, 혈육의 귀중함도, 친구의 우정도, 사회적 정의도, 모두 돈 앞에서는 가치와 존재를 잃어버리는 물질주의는 결국 우리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하는 말은 우리 생활 속에서 매일 경험하는 냉소주의를 배격하기 위한 실천강령이다. “다 소용없어. 결국 남는 것은 배신과 상처뿐”이라는 등의 냉소주의가 크게 자리잡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도, 결혼도, 우정도, 비단 신앙생활까지도 모든 것이 당장의 이해득실에 의하여 좌우된다. 사랑이 자유인으로 실천하는 생활의 길잡이가 되려면 적어도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고, “값없이 베푼다”는 내용을 지녀야만 한다. 희생이 없는 종교는 거짓이요, 희생이 없는 사랑은 허구에 불과하다. 상처받지 않는 안전한 사랑이란 인생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의 세대는 사랑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입으로 증거하며, 행동으로 보여주고, 그리고 삶이라는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끝으로 “아무도 보지 않는 듯 춤을 출 수 있다면” 하는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어떤 의미로는 인간 모두가 전통과 풍습과 습관의 노예라고 하겠다. 적어도 자유인으로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외우면서 살아왔다. 옳고 그른 것에 기준 없이, 밝음과 어두움의 구별도 없이, 인격과 권리가 짓밟혀도, 품위 따위는 헌신짝이 되어도 삼겹살 한 점 더 먹으면 좋다는 태도가 바로 “모나지 않게, 좋은 게 좋은 거니까”의 의미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춤을 춘다는 말은 모나는 삶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인의 삶을 원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주관을 떳떳하게 펼 수 있는 자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따르는 자유, 정당하고 중요한 가치관을 당당하게 말하고 실천하는 용기는 필수불가결의 실천강령이다.
자유인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변화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던가 너무 이르다는 말은 회피요 자기기만이다. 변화는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에게도 불편한 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습관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삶의 정진(精進)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변화만이 주어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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