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정치에 참여해본 적이 없이 일생을 보내온 탓에 잘은 모르지만 한국 정계에서는 안철수 신드롬이 거론되고 그 때문에 박근혜 대세론이 주춤해졌다고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 되고 있다.
의사 출신인데 컴퓨터 바이러스를 다루는 백신을 고안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 서울대의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으로 있는 안 씨는 오세훈 씨의 사표로 공석이 된 서울 시장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박원순 변호사를 지지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다음 대통령 선거 때 유력한 주자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면서 정치 특히 정치 형태의 역사를 잠간 생각해 본다.
20세기 중반의 미국 정치학자였던 해롤드 라스웰 교수는 정치를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차지하는가(who gets what, when and how)’라고 정의를 내렸다. 사람들이 농경이던 수렵 생활 시절 단결이 필요했기에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질서와 화평을 보장해 주면 그에게 복종하는 통치제도 즉 왕정(monarchy)이 생겼을 것이다. 일인 전제 통치(autocracy)는 출발이 괜찮았다 하더라도 얼마만 가면 부패하기 마련인 게 불완전한 인간 세상의 이치이다.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power corrupts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라는 존 액튼 경의 명언이 적용 안된 사회가 하나라도 존재했던가?
사족을 달자면 영어 archy와 cracy란 접미어는 통치 또는 정부 형태를 의미한다. 정부란 세금만 거둬들이고 전쟁만 일삼기 때문에 아예 정부가 필요 없이 개개인의 자유가 지상이라는 무정부주의(anarchy)도 있다. 그들의 주장이 실천된다면 통치의 중요 기능인 경찰과 공권력마저 있을 수 없기에 극도의 혼란과 무질서 때문에 살기가 어려워질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왕정이던 독재자던 1인 통치는 그 통치 유지를 위해 국민들을 억압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혁명이 일어난다. 그 결과 영국이나 북구의 몇 나라처럼 입헌군주국(constitutional monarchy)으로 발전되어 군왕은 실권이 없는 상징적 존재가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귀족정치(aristocracy)와 소수가 군림하는 과두(寡頭)정치(oligarchy)를 거친 사회도 있었다. 모국이었던 영국에 대한 독립전쟁으로 출발한 13개 주의 미합중국은 민주주의(democracy)를 이상으로 삼아 삼권분립과 입법, 행정, 사법의 삼부 사이의 균형과 견제로 국민의 복리에 기여한다는 거창한 목표로 출발했다.
링컨이 남북전쟁 격전지였던 게티스버그의 묘역을 헌정하면서 한 짧은 연설 가운데서 민주주의를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라고 정의를 내렸지만 그와 같은 이상이 아직까지도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진행형일 뿐이다. 그때까지 민주주의가 우선 국민의 정부라고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독립 직후의 투표권은 교육받은 백인 남자들 그중에서도 재산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노예 해방과 헌법 부칙 13조로 흑인 남성들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진 것처럼 보이던 것도 잠깐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투표를 할 수 없었던 사람들(흑인 남성들)은 하버드대학 출신이라도 붙기 어려운 시험에 붙어야만 투표할 수 있다는 여러 주들의 법 때문이었다. 백인 여성들조차 1920년에 가서야 참정권이 부여된 것만 보아도 ‘국민의 정부’가 진행형이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또 국민을 위한 정부라지만 도둑 귀족들(robber barons)이라 불리던 강철왕, 철도왕 등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 있어서 정치인들을 주물렀었던 19세기 말의 역사는 도둑정치(kleptocracy)란 말을 실감시킬 정도였다. 아예 흑인들은 아무리 똑똑하고 학벌이 있어도 차별을 받아 취직하기에 어려웠던 고난의 역사는 196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지만 민권법안의 통과 등으로 현재에는 인종과 성별과는 관계가 없이 소위 실력만으로 여러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주의 정치(meritocracy)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
그러나 선거에 이기자면 돈과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의 정치 헌금 제공자들 앞에서 허약하게 되기 마련이다. 인터넷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 때문에 선거에서의 돈과 조직의 중요성이 줄었다는 주장이 간혹 있지만 ‘글쎄올시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횡설수설은 다음에도 한 번 더 쓸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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