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10년 전 이 ‘피의 화요일’ 사건은 인류의 문명이, 그리고 그 문명이 축조한 인간의 가치체계가 바벨탑처럼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미국의 자본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약탈한 자연과 자본의 총화를 상징하는 뉴욕 월스트릿의 110층 세계무역센터가 연옥의 불길에 녹아 쏟아져 내리는 낙진(落塵)을 피해 우왕좌왕하는 인간 군상(群像)들의 처참한 자화상의 TV 클립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전 인류가 현장의 목격자가 된 이 비극이 던진 교훈과는 무관하게 인간은 지난 10년 동안 사상 최악의 도덕적 상흔을 씻고 불사조처럼 일어선 것처럼 보인다. 인류의 강한 생명력은 이차에 걸친 세계 대전과 냉전의 대결이 빚은 무한폭력 속에서도 수천만의 시체더미를 딛고 일어서서 템페의 계곡을 갈고 문명을 가꿔왔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에서도 생존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극단적 테러행위가 나온 배경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3노선의 국가, 민족, 혹은 집단이 이 같은 대규모의 폭력을 통해 세계에 호소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에서 발생한 저돌적 항의였다면 그의 해결방안은 반격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에서 찾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이 광적 분노의 폭발 뒤에 숨어있는 이유, 그리고 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에 대처하는 데 실패한다면 이 반문명적 폭력은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은 분명하다.
국제관계에서의 평화나 충돌의 구도는 전적으로 강대국의 대외정책의 공정성과 함수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슬렘의 세계에서 볼 때 미국의 대외정책은 언제나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랍인 대부분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에 접근하는 미국의 정책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미국과 서구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전 지구적 원성이 전혀 사실무근이 아니라면 9/11 대미 테러는 미국의 파행성 대외정책과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해 진다.
바로 여기에 문제해결의 열쇠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미국은 대중동 정책에서 편파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장기화 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군수산업 복합체의 이익에 봉사하는 정치인들의 야누스적 이중행태에서 기인한다. 이들이 평화를 말하면서 이 지역의 분쟁에서 매년 수백억의 무기를 팔고 있는 전쟁상인들과 결탁하고 있는 한 분쟁은 계속될 것이다. 불행한 것은 미국이 이 중요한 사실을 굳이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과, 경제, 예술, 그리고 지적보고(知的寶庫)를 가진 미국이 낙후한 정치문화에 의해 질식되고 있는 것이 비극의 근원인 것 같다. 왜곡된 정치제도, 여론조사에 의해 조삼모사(朝三暮四)하는 비전 없는 정치, 극도의 정당 이기주의, 대기업의 언론장악 및 금권에 농락당하고 있는 선거 등이 정치가 도덕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비극은 역사적 경험이 일천한 가운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일어선 데 있다. 미국의 영향력은 민주주의의 희망을 지구의 오지(奧地)에까지 전했으나 민주주의의 이상과 시행의 공정성에 큰 괴리(乖離)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20년 전 구(舊)소련에서 철의 장막이 무너져 내릴 때 세계의 많은 분쟁지역의 인민들은 그들도 마침내 민주주의의 배당금(配當金)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부풀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산되었고 제3 세계 전체가 깊은 좌절감에 빠져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미국의 반성이 새로운 접근을 위한 선결요건인 데도 불구하고 조지 부시 정권은 대미 테러와는 무관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여 ‘테러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무고한 모슬렘 인민들에게 폭력, 고문 등 온갖 만행을 자행하였다. 미국 군수산업 복합체의 영향력을 크게 피하지 못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정부도 집권하면 즉시 철군하겠다던 당초의 공약을 파기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비한 살상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 자본주의의 허상(虛像)이고, 미국 민주주의의 도덕적 추락(墮落)이다.
다행히 미국의 일부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침공뿐 아니라 과거 월남과 캄보디아에서, 아르헨티나, 니카라과, 컬럼비아, 그리고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천만의 사상자를 낸 비극적 역사에 대해 그 책임을 반성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소위 ‘기독교적 관용’의 이중성이다. 세계의 양심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 대량학살과 고문에 책임 있는 자들을 전범으로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들에 대해 기독교적 관용이라는 잣대를 댄다. 그렇다면 중동 등지에서 자행되고 있는 대량살육에 대해서 함구하고 좌시하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닌가?
어쨌든 미국이 이 비극에서 교훈을 얻어 앞으로 긴 역사적 안목에서 제 3세계를 포함한 전 지구적 평화를 모색하는 균형적이고 건설적인 접근으로 정책 방향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의가, 아니 오직 정의만이 대미 테러에 대한 최선의 방위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Editor.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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