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에는 우리나라처럼 밤새도록 죽은 사람을 지키는 ‘경야(經夜: wake)’라는 풍습이 있다. 이 풍습은 오늘날 루마니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거행되고 있다.
예로부터 루마니아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이 고인(故人)의 시체가 놓여있는 탁자 밑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밤새 지켰는데, 이유인 즉 동물이 시체 밑을 지나가면 고인의 영혼이 나쁜 영혼 즉 우리로 치면 나쁜 귀신으로 변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에서는 나쁜 영혼을 ‘스트리고이(strigoi)’라고 하는데, 루마니아인들은 만약 죽은 사람의 영혼이 스트리고이로 변할 경우 마치 우리나라 귀신처럼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돈다고 믿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고인의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기 전에 몸뚱이에서 빠져나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추억이 깃든 곳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고 또 그러다가 목이 마를 경우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집 창문가로 돌아와 물을 마시고는 다시 주위를 맴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경야 때 루마니아인들은 깨끗한 물을 담은 용기를 창문가에 놓아둔다.
일반적으로 루마니아의 경야풍습은 3일 동안 진행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풍습은 마을 사람들이 집 안마당 한가운데 피워 둔 모닥불 주위에서 먹고 마시고 카드놀이를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 일반적인 상갓집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아주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주술적인 의미에서 불이 나쁜 죄악들을 정화(淨化)시킨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경야풍습이 가장 잘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는 지역은 루마니아 브란체아(Brancea) 지방의 네레즈(Nerej) 마을이다.
경야 때 루마니아인들은 가면놀이를 하기도 한다. 대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늙은이의 가면이 사용되지만 이 외에도 여자의 모습이나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 심지어 악마나 신부님의 모습을 한 가면들까지 등장한다. 가면을 쓴 사람들 간에는 물론이고 가면을 쓴 사람과 일반 사람들 사이에도 즉흥적인 대화가 오고간다. 대화의 주 내용은 대개 서로를 놀리면서 조롱하는 것이지만 간혹 외설적이고도 부도덕한 것은 물론 심지어 소름끼치는 섬뜩한 유머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모닥불 주위에는 드럼과 플루트 그리고 코브저(cobză: 루마니아의 민속악기로 일종의 기타)의 연주에 맞춰 사람들이 ‘키페룰(chiperul)’이라는 루마니아 민속춤을 춘다. 춤은 처음에 천천히 진행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점점 더 빨라진다.
따라서 처음에 슬프고 무거웠던 경야(經夜)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시끄러우면서 밝아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따금씩 경야의 분위기가 너무 즐거운(?) 나머지 고인의 가족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차례로 불 위를 뛰어 넘는데, 이때 주위 사람들은 불꽃과 함께 재와 불똥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고함을 지르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간혹 고인에 대해서도 진한 농담을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위의 목적은 고인의 가족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물론 고인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즐겁고 편안하게 건너가도록 하는데 있다.
경야에 참여한 마을 원로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고 즐기면서 “이봐 젊은이들! 재미있게 놀아보게나, 죽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이 시작되면서 존재하는 걸세!”하며 독려하기도 한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 다소 이상하게 보이는 네레즈 마을의 주술적인 행위는 삶과 죽음을 대하는 루마니아 민족 특유의 자연스럽고 의연한 태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
루마니아 장례식에서 행해지는 춤과 그 기원을 연구한 민속학자 이오안 마소프(Ioan Massoff)는 “루마니아인들이 장례식에서 춤을 추는 것은, 춤을 추는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을 고인과 함께 하고 또한 삶의 기쁨을 고인과 함께 느끼고자 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와 같은 루마니아 장례풍습이 “그리스인들과 에트루리아(Etruria: 이탈리아 중서부에 있었던 고대국가)인들이 거행하는 장례식 놀이의 기초가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루마니아의 경야 풍습은 일반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다소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조금만 관점을 바꿔서 생각하면 아주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어쨌든 이러한 루마니아 장례풍습은 루마니아인들의 삶의 일부인 동시에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그들의 믿음이자 문화인 것이다.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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