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타는 우리 딸의 큰 딸 이름이다.이제 막 열두살이 되었는데 그애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딸이 로스쿨을 졸업하고 몇달간 변호사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나와 함께 한국엘 가게 되었을때,캐나다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결국은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그래서 생겨난 딸이다.
1997년 우리가 귀국해서 며칠 되지 않았을때 함께 덕수궁 근처를 걷다가 그냥 재미로 운수를 보게되었는데,그때 날라리 같던 점쟁이가 딸을 보더니 이년후인 1999년에 귀자를 낳게 될것이라고 말해 우리들을 아연케 했던 적이 있다.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그 점쟁이 말은 딱 맞아서 결국 딸애는 그해 아기를 낳았고 이름을 사만타라고 지었다.
처음 한국으로 가게 되었을때 딸애는 길어야 약 두달을 머무를 예정이었다가 그 여행은 삼년으로 연장이 되었다.이미 미국에서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이 되었지만 그애가 정작 변호사 일을 시작한것은 삼년후인 2001년이었다.나와 남편이 그애 결혼에 반대를 했지만 결국 그들은 태국으로 날아가 그곳 어느 경치 좋은 섬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해버렸다.
어느날 그 당시 가까이 지냈던 친구가 전화를 해서 왜 자기를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느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했을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나도 초대 받지 못한 결혼식인데 어떻게 친구를 초대하느냐고"
결국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삼년이 채 못되어서 깨어지고 말았다.나는 처음부터 그들의 결혼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그냥 엄마 본능의 느낌이었다.아기가 한달쯤 되었을때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아기에게 키스를 하고 대문을 나오려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않았다.그때 아기를 안고 나를 바라보던 딸애의 눈빛이 그렇게 슬프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그 애절한 눈빛을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잊을수가 없어서 나는 계속 마음속으로 울었다.한참의 세월이 흘러서 딸애는 그때의 심정을 고백한적이 있다.그때 자기도 엄마를 따라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고.
벌써 십이년전의 일이다.그후 아기 때문에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일년에 몇번씩 타고 다녔는지 모른다.사만타는 전형적인 백인 미녀로 생겼는데 유독 그애의 눈은 한국 사람들이 다 부러워 하는 그런 눈이다.아기 때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모여서 그애를 구경하곤 했다.이태원의 한 안경점 주인은 사만타만 보면 "이 백만불 짜리 눈을 보세요"하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자기가 큰소리로 자랑을 하곤 했다.그만큼 사만타의 눈은 유난히 크고 아름다운 갈색에다가 숱이 많은 긴 속눈썹이 일품이다.
지난 유월에 열두살 생일을 맞아 스틴슨 비치에 가서 생일 잔치를 했다.미국 아이들이 열두살이 되면 집에 혼자 있어도 되고 여행도 보호자 없이 갈수 있고 베이비 시터도 할수 있다.얼마 전에 혼자 뉴저지에도 갔다 왔다.친할머니 린다가 그곳에 살고 있어서 일년에 한번씩 가서 놀다가 오는데 그곳에서 제 친아버지도 만나고 온다.그애는 제 친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하는것 빼고는 불평 할것이 하나도 없는 애다.
우리 사위인 스티브를 대디라고 부르고 제 친아버지는 그냥 마커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마커스가 일년에 두어번 샌프란시스코로 찾아 오기도 하는데 그럴때마다 딸네 식구와 함께 밥도 먹는다.나도 내 자신을 상당히 리버럴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애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약간 아슬아슬 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보수적인 한국사람들 눈으로 보면 아마 콩가루 집안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딸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모두 사만타를 위해서란다.사만타를 편하게 하려면 그애 아버지와도 인간적이고 자연스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제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 나와서 딸애도 불혹이라는 나이 사십에 도달한 지금,예전보다 훨씬 편해보이는게 사실이다.불꽃 같은 젊음과 번민의 날은 가고 한동안 방황했던 작은배가 이제 겨우 항구에 닿아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라고 할까.인간은 이렇듯 누구나 방황하고 갈곳을 몰라 헤메던 때가 있다.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왜 한때는 그렇게 죽을것 같은 고뇌로 번민을 했는지!
"엄마!나는 한번도 지난날에 대해 후회해 본적은 없어요.결국 나는 사만타를 얻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딸애를 보면서 인생이란 정말 잃는게 있으면 얻는것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모든 생물이 살아나고 다시 푸른 싻이 돋아 나듯이 우리 모두는 아픈 과거의 기억을 거울 삼아 새로운 삶에 도전하게 된다.
요즘 사만타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된다.자신이 태어난 나라여서 그런지 그애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그런 그애가 어느날 갑자기 "엄마!할머니! 나도 내가 태어난 코리아에 가볼래요"라고 말하면서 냉큼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탈까봐,그래서 또 엉뚱한 인연을 만들까봐서,그런 생각을 하면서 벌써부터 전전긍긍하는 나는 분명 어리석은 할머니임에 틀림 없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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