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옥
대학 강사·수필가
영화는 끝났건만 자리에서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주인공 아이빌린의 걸어가는 뒷모습이 화면에서 하나의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앉아있었다.
책을 이미 읽은 우리들은 아이빌린의 뒷모습에서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I am free!” 어이없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해고당해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진정한 자유를 우리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십중팔구 실망하기 마련인데‘The Help’ 영화는 책을 잘 살렸고, 특히 흑인 가정부 아이빌린의 역을 맡은 비올라 데비스의 명연기가 아이빌린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내었다.
올여름에는 계획한 것도 아니건만 ‘자유’ 라는 화두를 두고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여름동안 접한 책과, 강연, 그리고 영화가 한결같이 자유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곧잘 자유, 용기, 믿음, 그리고 정의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지만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물어본다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정해진 틀, 혹은 주어진 환경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 닫힌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과 용기가 필요한지 생각해보며, 나를 돌아보며, 많이 부끄러웠다.
‘The Help’의 주인공인 흑인가정부 아이빌린은 자신이 일하는 백인가정에서 여자아이를 갓난아이 때부터 극진한 사랑으로 돌본다. 아이 얼굴이 예쁘지도 않고, 뚱뚱하다고 못 마땅해 하는 아이엄마를 대신해서 아이에게 자존감을 심어주는 과정은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을 준다.
아이블린은 틈만 나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렇게 말해주며 아이에게 따라하라고 한다. “나는 친절하다”“나는 똑똑하다”“나는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그리고 아이가 부모와 유치원에서 배우지 못하는 인간평등에 관해서도 놀이를 통해 꾸준히 가르친다. 까만 종이에 싼 사탕과 하얀 종이에 싼 사탕을 주고 아이에게 껍질을 까보라고 한다. 똑같은 사탕이 나오는 걸 확인시켜주면서 중요한 건 겉포장이 아니라 속에 들어있는 내용물이라고 말 해준다.
어느 날 아이가 돌도 안 된 동생과 소꿉놀이를 하면서 동생에게 경찰이 와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도망가지 말라고 말한다. 이를 목격한 아이의 아빠가 아이를 다그친다. 그런 걸 누가 가르쳐줬느냐고. 아이블린은 아이가 자신이 가르쳤다고 말할 것을 알고, 그리되면 당장 해고당할 것이 명백하므로 숨을 죽이고 아이를 바라본다. 그러나 아이의 입에서는 학교선생님 이름이 나오고, 아이아빠는 부인을 시켜 학교에 항의를 하라고 한다. 세 살 남짓한 아이가 아이블린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아이블린이 억울하게 도둑의 누명을 쓰고 해고당해 그 집을 떠날 때도 아이는 아이블린에게 매달려 가지 말라고 울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친절합니다”“당신은 똑똑합니다”“당신은 중요한 사람입니다”라고. 아이블린에게 이보다 더 크고 소중한 선물을 없었다.
책의 저자 캐서린 스토킷은 자신에게 어머니 같았던 흑인 가정부를 떠올리며 한 번이라도 그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자신에게 묻게 되었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 소설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이제 1960년대 같은 인종차별은 많이 완화되었고, 흑인 대통령도 나왔으나 불과 50년 전만 해도 미국은 엄격한 인종차별과 흑백 분리정책이 지배하던 곳이다.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고 해서 그러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차별은 또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또 어떤가? 흑인을 대놓고 무시하여 ‘깜둥이’라는 명칭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섬뜩할 때가 있다. 서로를 부르는 명칭, 그 명칭이 만드는 벽 때문이다. 예전에는 회장, 사장, 교수, 원장, 의원 등 몇 안 되던 것이 이제는 세분되어 아들을 ‘부총지배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직장에서 이름 뒤에 직함을 꼭 붙이는 번거로움(‘이 아무개 부주방장님’)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결국 신분의 확실한 경계를 긋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너는 내 밑’‘나는 네 위’‘나는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위해서가 아닐까?
“The Help’의 아이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은 중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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