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나보다 대학원에서 시를 공부하고 지금은 목사가된 아들이 더 잘 알것 같아 아들에게 물어봤다.
아들은 “모든 작가는 자기 주위와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이유(why)를 알고자 추구한다. 이 ‘와이’가 그들의 추진 동기이다”면서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깊은 갈망을 풀어줄 이 ‘와이’를 찾지도 또 이해하지도 못할지라도 그것을 찾아 가는 과정에 의미가 있다고 믿고자하며 아울러 그 여정의 끝이 단순히 하나의 큰 의문부호나 암흑 이상의 것임을 믿고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결국 이 삶과 그 것의 제반사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작가의 모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카와바타 야수나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 가다가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풀지도 또 그 장막을 거둬낼 수도 없는 의문부호와 암흑에 부닥쳐 그 여정을 도중에 멈추고 만 것일까.
올해는 생전 ‘파파’라 불린 어네스트 헤밍웨이(사진)가 지난 1961년 7월 2일 61세로 엽총자살한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헤밍웨이는 삶보다 더 크고 극적인 삶을 살다 간 작가로 실존주의자요 사실주의자였다.
노벨상과 퓰리처상을 받으며 20세기 미문학에 지대한 공로를 남긴 그는 술과 여자와 전쟁 그리고 액션과 모험과 사냥 및 낚시와 투우등을 즐기며 인생을 치열하게 몸으로 산 경험주의자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쓴 그의 여러 작품들을 보면 헤밍웨이가 죽음과 폭력 같은 극단적이요 가차 없는 한계 상황에 자신을 던져 스스로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이상주의자 로버트 조단과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헤밍웨이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
헤밍웨이는 육체적으로 이렇게 맹렬한 삶을 산 ‘마초 맨’이어서 나 같은 골방 안주형인 약골은 그의 삶이나 글을 읽으면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인생은 저렇게 한 번 살아 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동경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폭력적이다 시피할 정도로 화끈한 삶을 산 작가여서 나는 그의 자살 뉴스를 들었을 때 그 죽음이 그에겐 잘 어울리는 것이라고 느꼈다. 작가가 추구하는 것이 미와 삶의 의미 그리고 희망과 삶의 고통에 대한 이해일진데 헤밍웨이가 이런 것들을 찾으려고 분주히 살다가 결국 손을 들고만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헤밍웨이 아버지와 그의 손녀로 배우였던 마고 헤밍웨이도 자살했다.
내가 대학생 때 읽은 카와바타 야수나리가 개스자살(사고사란 말도 있다)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난 같은 생각을 했다. ‘설국’처럼 차갑도록 간결하고 눈꽃처럼 아름다운 글을 쓴 그도 역시 자신의 깊은 동경을 풀어줄 삶의 이유를 찾다가 지쳤던 것은 아닐까하고 내 나름대로 추측했었다.
미치광이 극우파 유키오 미시마의 자살도 어떻게 보면 나름대로의 의미 추구를 위한 극단적 해결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삶의 이유를 찾는다는 불가능한 소명을 질머져야 할 작가들은 결국 자살할 수밖에 없는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내가 헤밍웨이를 처음 읽은 것은 고3때 줄담배를 태워 ‘굴뚝 강아지’라는 별명이 붙었던 박승관 영어 선생님을 통해서였다. 그는 어느 날 우리들에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영어판을 나눠 준 뒤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 읽으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해석을 해 주는 것도 아니어서 사전을 들춰 가며 읽었는데 그 때도 글이 간단하고 장식 없이 절제 됐으며 또 강건하고 직선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불굴의 인간 혼의 승리를 박력 있게 그린 글에 심취했었다.
‘노인과 바다’는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봤는데 산티아고 역의 스펜서 트레이시가 자기가 잡은 거대한 청새치를 공격하는 상어떼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도 모두 영화부터 본 뒤 책을 읽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특히 짧은 머리의 마리아(잉그릿 버그만)가 로버트(게리 쿠퍼)에게 키스를 할 때 코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
로버트는 자살이나 다름 없는 죽음을 통해 스스로를 긍정하는데 나는 어렸을 때 이 영화를 보면서 그의 용기에 전율했었다.
2차대전 까지 모두 다섯 번 군인과 기자로 액션을 경험한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처럼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쓴 ‘무기여 잘 있거라’에는 록 허드슨(프레데릭 역)과 제니퍼 존스(캐서린 역)가 나오는데 이 영화 보다는 게리 쿠퍼와 헬렌 헤이스가 나온 옛날 것이 낫다.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끝 부분에 프레데릭이 빗속을 걸으면서 죽은 캐서린을 생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너무 슬프고 아름다워 나는 책을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 밖에도 헤밍웨이 글이 영화화 된 것들로는 ‘해는 또 다시 떠 오른다’와 ‘가진 자와 안 가진 자’ 및 ‘킬리만자로의 눈 ‘ 등이 있다. 헤밍웨이는 현재 상영 중인 우디 앨런의 ‘파리의 자정’(Midnight in Paris)에서 만날 수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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