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북부지역에 있는 마라무레쉬(Maramureş) 지방의 서픈짜(Săpânţa) 마을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즐거운 공동묘지(Cimitirul Vesel)’라는 곳이 있다. 이곳의 역사는 1935년 루마니아 민속 예술가 퍼트라쉬(Stan I. Pătraș)가 참나무로 십자가를 만든 후 거기에 고인과 관련한 짧은 내용의 해학적인 시구(詩句)를 비문으로 조각하면서부터이다. 조각가이면서 화가 그리고 시인이었던 그는 그동안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수백 개의 십자가를 만들었고 또 1977년 그가 사망한 이후에는 제자 틴쿠(Dumitru P. Tincu)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즐거운 공동묘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세계의 여러 방송국들이 특집으로 방영했는데, 우리나라 방송국은 물론 독일 RTL 그리고 지난 2010년에는 미국의 한 TV에서 방영되는 것을 보았다.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공동묘지라는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와는 달리 일단 이곳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고 나오기 때문이다.
즐거운 공동묘지는 루마니아인들의 선조인 고대 다치아(Dacia)인들의 믿음과 깊은 연관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치아인들이 크리스트교가 현재의 루마니아에 전파되기 이전인 기원전부터 이미 영혼의 불멸(不滅)을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죽음을 슬픈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다치아인들은 죽어서 저 세상으로 가면 자신들의 최고신인 자몰세(Zamolxe)를 만날 수 있어 기뻐했다고 한다.
즐거운 공동묘지는 루마니아만의 독특한 장례문화 중 하나이다. 묘지 앞에 세워져 있는 십자가에다 다양한 색깔(주로 푸른색)로 색칠을 한 것은 물론 고인의 일생과 관련한 다양한 문구가 적혀 있다. 슬픈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해학적이어서 방문객들을 웃게 한다.
십자가에 적혀있는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작별인사를 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58세인 나를 버렸습니다.”
“여기 무거운 십자가 밑에 나의 불쌍한 장모님이 누워계십니다. 장모님이 3일만 더 살아 계셨더라도 내가 여기에 누워있고 장모님이 (내 무덤의 비문을) 읽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여기에 오시는 여러분들! 우리 장모님이 깨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왜냐하면 만약 장모님이 (무덤에서 깨어나)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시 내게 잔소리를 해댈게 뻔합니다. 그래서 저도, 더 이상 장모님이 돌아오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입니다. 여기에 사랑하는 나의 장모님이 쉬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나는 편히 쉴 것입니다. 내 이름은 브라익 일레아너(Braic Ileană)입니다. 야, 그리거(Grigă)야! 네가 비록 나를 죽였지만 너는 용서받을 수 있을 거야.”
십자가를 만드는 사람은 죽은 사람의 일생을 듣고 난 후 고인의 일생과 관련한 재미있는 문구 즉 비문을 만들어 준다. 아직 죽지 않았는데도 그곳에 가서 미리 십자가를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자신과 관련한 재미있는 문구가 적혀있는 십자가를 보고서는 아주 좋아하며 집으로 가져간다.
필자는 이곳에 세 번 가보았다. 갈 때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적혀있는 문구를 보며 웃는 것을 보았다. 두 번은 그냥 가보았고 세 번째는 자료 수집을 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그곳에서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었고 루마니아 정교회 신부님도 만날 수 있었다. 이때다 싶어 신부님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모두 물어보기로 작정을 했다. 하지만 대화도중 종교가 무엇이냐는 신부님의 조용한 목소리에 자료수집에 급급한 나머지 그만 무교(無敎)라고 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신부님은 내 질문에 영양가 없이 어느 정도 대답해 주다가 내가 열심히 적는 틈을 타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그때는 신부님이 야속하기도 하고... 아쉬운 생각뿐이었다.
사실 루마니아 문화를 알면 그 신부님의 행동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한국에는 무교인 사람도 꽤 있지만 루마니아에는 아이가 태어나 생후 3개월이 되면 모두 교회에서 세례를 받기 때문에 애당초 무교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루마니아에는 무교인 사람도 없을뿐더러 또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천국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신부님의 입장에서 보면, 죽어서 하늘나라로 가지 못한 채 불쌍하게 구천을 떠돌 미래의 나쁜 영혼(?)과 대화하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한국외대 교수/ 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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