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thanasia / 안락사(安樂死)
-------------------------------------------------------------
He is not completely gone,
as long as one person remembers his name.
그는 아주 가는 게 아니다,
적어도 한 사람만이라도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
그렇게 끝납니다.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사람의 목소리로 이 말씀이
전해집니다. 화면에는 그 분의 가족사진이 생전 건강했던
그와 부인, 그리고 두 자녀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모든 게 끝난 뒤, 방금 화면 속에서 스스로 죽음을 만난
그 분의 마지막 인사말이 담담하고 숙연하게 전해집니다.
"My love and best wishes to all of you."
거의 숨죽이고 보았습니다.
사람의 죽는 모습. 그것도 소위 ‘적극적 안락사’라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모습. 코에 매달린 긴 튜브가
거추장스러운 듯 가까스로 빨대로 마시는 사약(死藥). 스스로
택한 베토벤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서서히 죽음 속으로
빨려 드는 건장한 중년의 남자. 결국 마지막 숨이 끊기고
죽은 사람의 몸으로 누워있는 남자에게 마지막 키스를 하는
아내. 말로 형언키 어려운 여러 느낌들이 한참 이어집니다.
PBS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The Suicide Tourist."
PBS 명품관 "Frontline"이 제공하는 가슴 뭉클한 다큐입니다.
올해 59세의 미국인 크레그 이워트[Craig Ewart]는 은퇴한
컴퓨터학과 교수. 몇 달 전 루게릭병으로 전신마비에
호흡곤란 등으로 혹독한 투병생활을 지속하던 중, 이젠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결심으로 스위스 소재 안락사
전문기관에 자살보조를 신청해 놓은 상태. 그리고 평생
함께 살아온 아내와 떠나는 자살 여행. 그리고 이어지는
앤타이클라이맥스[anticlimax]!
--------------------------------------------------------------
Suicide is wrong. God has forbidden it.
You cannot play God and take your own life.
자살은 그르다. 신은 자살을 금지했다.
당신은 신 행세를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다.
----------------------------------------------
크레그 스스로 이렇게 반문해봅니다.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죠, 자살은 옳지
않다고. 하지만 지금 내 몸에 주렁주렁 달린 이 튜브도
어쩜 신 행세를 하는 거 아닌가요? 이거 아니면 난 이미
죽었을 겁니다." "But you know what? This ventilator is
playing God. If I had lived without access to technology,
chances are I would be dead now."
평생 함께 살아온 아일랜드 계 가톨릭 신자인 부인은
남편의 휠체어 옆에 앉아 담담히 남편의 소리를 들어 줍니다.
긍정도 부정도 모두 관심 없는, 그저 처절하고 서글픈
상황입니다. 문제는, 죽어 간다는 겁니다. 저승사자가 매 순간
무척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겁니다. 동시에, 죽어가는
상황이 몹시 처참하다는 겁니다. 물 한 모금도 혼자 마실 수
없고 호흡도 코에 매달린 긴 대롱에 매달린 상태고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한 마디로, 죽지 못해 사는
중이란 겁니다.
그런데, 이 분은 ‘고귀한 죽음’ [a dignified death]을 맞을
권리를 의식합니다. 깨인 상태로 당당히 죽음을 맞겠다는
겁니다. 어차피 곧 처참하게 죽을 판국입니다. 하루하루 대롱과
아내에 매달리다 결국 참혹한 죽음을 맞을 게 불을 보듯 환한
실정입니다. What’s the point? 무슨 의미냔 거죠.
------------------------------------------------
He is not completely gone,
as long as one person remembers his name.
그는 아주 가는 게 아니다,
적어도 한 사람만이라도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
’기품 있는 죽음[a dignified death]’을 위해 ‘죽을 권리’
[the right to die]를 택하는 적극적 안락사. 영어 단어로
안락사(安樂死)는 ‘euthanasia’ [유터내~시어], 말 그대로
‘좋은’[eu] + ‘죽음’[thana]이란 뜻입니다. 잘 죽는다는
말이죠.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혼비백산하며 죽기를
거부하는 ‘고귀한[dignified]’ 죽음이요 ‘적극적’ 죽음이란
의미도 들어 있는 셈입니다. 글쎄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적어도 한 번쯤은 심각하게 물어 볼만한
질문이 아닐까요?
"Mors Certa, Hora Incerta!"
영어권에서도 통용되는 라틴어 격언입니다.
죽음은 분명하다. 죽음의 시각은 불확실하다.
Death is certain, the hour of death is uncertain.
늘 가슴 속에 담고 사는 말이지만,
"The suicide Tourist"를 보며 넌지시 속으로 물어봅니다.
죽음의 시각이 늘 그렇게 불확실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어떻든가? 선방의 고승대덕들은 미리 날을 잡아 아시고
제자들에게 내일 간다 하시며 오늘 밤 스스로 다른 경계로
들지 않던가? 과연 뭐가 다르단 말인가?
What’s the difference?
Cheers!
OM~
---------------------------------------------------
English for the Soul 지난 글들은 우리말 야후 블로그
http://kr.blog.yahoo.com/jh3choi [영어서원 백운재],
EFTS 폴더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 /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