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의 생산·가공·유통과정 궁금증 풀어주는 책들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듯이 집집마다 먹는 습관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음식은 삶을 유지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며 그 생산과정이 지구의 자연환경과 직결되어있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선택하고 먹느냐 하는 문제는 결코 단순할 수가 없다. 단지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생각, 시간과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삶의 전반적인 범위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광우병 파동, 조류독감 등의 무시무시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먹을게 없다!’며 한숨 쉬지만 또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고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되풀이되는 음식 관련 악재는 거대 산업 식품회사들의 인간성과 자연을 짓밟은 횡포로 인해 벌어지는 인재이며, 결국은 소비자인 우리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답답한 현실이다.
그러나 희망적인 사실은 공장 식 식품생산이 인류 역사상 최고로 발전한 동시에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도 강하게 끓어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올바르게 생산된 바른 먹거리에 대해 공부하는 일을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내어 요리하는 일을 단순한 노동으로 여기지 않으며, 먹는 일을 환경보호와 일치시키는 지식을 가진 사람, 기꺼이 식재료를 직접 재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광고의 유혹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알기 힘든 식재료의 생산, 가공, 유통과정이 너무나 궁금한 사람, 분명히 고기, 빵, 생선 과일 등을 고루 먹었는데 섭취된 영양소는 지방과 당분뿐이라는 사실의 답이 궁금한 사람,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싶은 사람, 지구와 인간을 위해 삶의 방식에 조금 불편한 변화를 시도해 보고싶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은 책들을 소개한다.
음식의 바른 가치를 추구하는 저자들은 잔인하게 사육되는 동물들을 먹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1.식량전쟁
(배부른 제국과 굶주리는 세계, Stuffed and Starved-라즈 파텔 지음)
지구 존재 이래 식량 생산은 최고조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인구 열 명 중에 한 명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 사상 최초로 과체중 인구가 10억명에 달해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 8억명을 앞질렀기도 하다. 곡물가격은 급등했고,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식량자원의 불균형은 다름 아닌 이윤만을 추구하는 식품기업에 의해 좌우되어 그 피해는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와 연계된 기업의 잔인한 독점에 따라 좌우되는 식량의 생산, 유통, 판매에 관한 궁금한 점을 온 세계의 현재 상황을 아우르며 체계적으로 분석해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전세계의 농부들과 관련 종사자들이 일터와 삶의 터전까지 빼앗기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처참한 현실이지만 정치인들은 이를 묵과하고 시장은 소비자와 함께 제멋대로 요동치고 있다고 말하면서,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궁지에 몰린 한국 농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세계무역기구 회담장에서 자살해 세계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던 한인 농부 고 이경해씨의 사건을 취재하러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세계무역기구가 이경해씨를 죽였는가?’라는 제목으로 자세히 이 사건을 다루면서, 전 세계적으로 농촌이 피폐해진 그 원인과 과정도 소개한다. 식품업계를 재편하고 농민과 소비자를 착취하는 권력에 대항하여 소비자의 주권을 적극적으로 되찾을 방법을 소개한다.
희망은 오직 소비자에게 있음을 강조하며,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이 어느 정도의 실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 논리적인 주장을 펼쳐 함께 행동해 나갈 방법을 제안한다. 음식을 통해 정치문제와 연계된 세상 돌아가는 일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일상의 식품 소비를 통해서도 윤리적 통찰력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같은 맥락의 후작으로는 ‘먹거리 반란’(모두를 위한 먹거리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혁명)도 최근 번역 출판되었다.
#2.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Slow Food Nation-카를로 페트리니 지음)
패스트푸드에 반대하는 슬로푸드 운동의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가 세계를 여행하면서 사람들이 먹을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것이 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직접 목격한 경험들을 일기 형식으로 남긴 칼럼을 모은 책이다.
패스트푸드를 배척하고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미래 세대에게 남겨주어야 할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한 그의 살아있는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음식의 바른 가치를 아는 ‘미식가’로 정의하고, 공장식 농축산업에 의해 사라져가는 세계 곳곳의 고유한 음식 문화와 이에 따르는 생태학 파괴를 막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먹기 이전, 식재료를 고르는 과정에서도 특정한 식물을 알아보고, 그것을 누가, 어떻게 어디서 재배했는지,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관과 요리법에 대한 지식까지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식물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닌 소비자 개개인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먹는 일은 반드시 즐겁고 유쾌해야 하는데, 이는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식재료가 몸에 이롭고 맛있어야 하고, 청결하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에서 생산되어야 하며, 공정한 사회정의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풍부한 직접 경험으로 얻어진 지식을 갖추고, 지역 농산물의 적극적인 소비를 통해 농부와 함께 소비자도 공동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현대 문명 속 영농방법의 실태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해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건강한 식재료 생산에 개입시켜 좋은 먹거리 유통에 앞장서는 소비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사회환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혀를 즐겁게 하는 맛있는 음식에만 탐닉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로 여겨지는 ‘미식가’와 ‘미식학’에게 미래를 위한 바른 음식문화를 선도해나갈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맡기며, 생명을 이어나갈 필수관계인 지구환경, 인간과 먹을거리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3.잡식동물의 딜레마
(The Omnivore’s Dilema-마이클 폴란 지음)
마이클 폴란은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환경 운동가로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남겼으며 UC 버클리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며 수많은 음식 관련 서적을 남겼다. 미국 ‘이성의 목소리’로 불리며 음식과 삶의 방식을 연결시키는 그의 통찰력이 일으킨 작은 폭발은 뉴욕타임스와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사람들의 먹는 방식과 사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라는 평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525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 담겨 있다. 그가 말하는 ‘식사’는 문화, 정치, 생태를 모두 융합한 의미있는 행위이며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선택이 우리의 삶과 세계의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임을 알기를 원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연세계에 관한 생각은 조금도 없이 산업적 음식사슬을 기반으로 생산되는 오염된 음식에 완벽하게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이 책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먹는 즐거움을 보여주며 이 즐거움은 오직 앎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잡식동물인 인간은 인류 역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식문화를 주체적으로 형성해 나갔으나, 요즘은 거대 식품기업에게 그 역할을 내주고 말았다. 정치 세력과 식품업계의 장악으로 좌지우지되는 ‘진실없는 정보’에 무지한 상태로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이제는 소비자가 직접 정확한 현실을 파악하고 보다 삶의 본질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식품소비를 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생활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 독자들도 많다. 직접 먹을 채소를 재배하고, 다른 지출을 줄여 바른 먹거리 소비에 투자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며, 에너지를 절약하는 등 귀찮아 외면하고 싶은 생활 전반에 걸친 업그레이드를 강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연이 아닌 대형 마트 앞에 선 인류가 처한 위험을 정확히 알려주고, 먹는 행위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해 주는 책이다.
마켓에는 설탕옷을 입은 50가지 시리얼이 즐비하다. 당분이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종류도 있다.
#4.죽음의 밥상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 The Ethics of What We Eat-피터 싱어, 짐 메이슨 지음)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 분야의 거장이자 동물 해방론자로 윤리체계를 통하여 빈곤과 기아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학자이다. 그가 5대째 농부 집안의 농부이자 변호사인 짐 메이슨과 함께 발로 뛰며 저술한 이 책은 현대의 대형공장 시스템 속에서 잔인하게 사육되고 있는 동물들을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둑질, 거짓말, 남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 우리는 확실히 비도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먹는 일’에 대해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질 만큼 현대인들은 무감각하게 먹고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 대형마트에서 행해지는 식품구매 행위는 싼 제품 구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윤리적 문제에 관한 정보 따위는 전혀 제공되지 않으며, 식품광고에는 광고주가 들려주고 싶은 정보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책 속에는 각기 다른 입맛, 식습관과 식품 샤핑방식을 가진 대표적인 세 가족을 모델로 제시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그들의 먹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깐깐히 추적해 나가며 좀 더 윤리적인 먹거리 샤핑과 즐거운 식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공장식 시스템에서 사육된 닭이 싼 이유는 환경오염이나 노동자 착취같은 만행이 그 배후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며 싸게 구입한 닭은 결국 우리에게 그 책임을 물어 돈으로 해결 안 될 더 큰 손해를 감수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싼 제품=좋은 제품’이 아니라는 먹거리에 대한 개념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또한 이 책은 똑똑한 식품샤핑 방법을 제시하는데, 수입 유기농산물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비유기농 지역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더 나은 친환경적 선택이라고 알려준다. 닭고기, 쇠고기, 돼지고기, 우유 생산과정을 자세히 기술하여 읽기가 괴로울 정도지만 광범위하면서도 생생한 체험형 탐구를 종합해 식생활과 삶의 관계에 대한 쉽고 빠른 사고의 전환을 돕는다.
<글 사진 이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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