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KBS 방송국에서 특별 기획으로 동무 생각이란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나는 너를 위해 노래 부른다’
박태준 작 동무생각이란 가곡의 일절이다.수십년전 갈래 머리를 땋아 내렸던 청순한 여학생들은 이제 팔십 노인들이 되어 그들의 젊음을 불태웠던 청라 언덕에서 재회를 하는데, 산천은 변함이 없고 그때 부르던 노래도 그대로인데 오직 흘러가는 인생만 무상하다는 그런 내용이다.
우리가 어릴적만 해도 친구를 동무라고 불렀고 그말이 정다웠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동무가 친구로 바뀌고 말았다.아마 육이오 이후 빨갱이들이 동무 동무 하는 바람에 저절로 호칭이 바뀐것 같다.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슴이 짠해졌고 나도 이제는 볼수 없는 어린 시절 아니 여학교 시절의 동무들이 생각이 나면서 또 그리워졌다.
헌평생을 살아 오면서 내가 진실로 동무 아니 친구라고 부를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이며 몇이나 될까? 한사람의 진실한 친구를 가진 자는 부자라고 누가 말했던가?진실한 친구는 서로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공유해야 할것 같다.어릴적 동심 속에서 만난 동무들은 그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왜냐하면 우리들의 마음이 순수했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한동네에서 같이 자랐던 인희와 금자,또 내 사촌이면서 이제는 저 세상으로 가버린 현숙이,고등학교 시절에 매일 붙어 다니면서 안국동과 가회동 골목을 휩쓸고 다녔던 선기와 혜숙이,그리고 대학 시절 단짝이었던 정애와 희숙이,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사실 연락이 끊킨지 수십년 만에 내가 쓴 글을 어떤 여성 잡지에서 보고 국민학교 동창들이 전화를 해와 우리들은 근 오십년도 넘어 한 동창 집에서 재회를 할수 있었다.금자는 살이 너무 쩌서 알아 볼수가 없었고 인희는 약간의 치매기가 있다고 누군가 귀뜸해 주었다.나도 너무 많이 변했다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 했다.
아마 변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세월은 너무 많이 흘러갔다.그후로 몇번 더 만났지만 첫번째의 흥분이 가시자 우리들은 더 이상 함께 할 대화가 없어졌다.그들은 한국에서,나는 미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너무 오랜 세월을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죽은 정애나 현숙이가 살아 있다면 어떨까?육이오가 났을때,나는 몇달간을 보지 못했던 현숙이가 그리워 우리 과수원 배밭에 올라가 목청껏 가곡을 부르고 현숙아!하고 큰 소리로 그애 이름을 부르곤 했다.그애가 빨간 원피스를 입고 감나무 숲 사이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것이 어제 일만 같다.그애는 내가 대학 일학년때 기숙사로 마지막 면회를 온 다음날 자살을 했다.우리 이모였던 그애 엄마가 재혼을 하고 복잡한 가족 사이에 섞이지 못해 마지막 선택을 했던것 같다.
정애도 사십 초반에 백혈병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됐다.그애가 죽었을때 나는 미국 텍사스 주에 있었고 그애가 아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그애와 가족들은 결국 병을 고치려고 미국에 오게 됐고, 그 와중에 보험도 없었던 그애는 있는 재산 다 날리고 죽었다는게 남은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넌 나쁜년이야.미국 갈때도 소리 없이 가버리고 학창 시절엔 남자 아이들이 너만 좋아했잖아.난 얼굴도 까맣고 키도 작아서,그래서 난 변변한 추억 하나 없단다’
그애는 내가 처음 귀국했을때 이렇게 푸념을 했다.
정애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동그란 귀여운 여자였다.학창 시절엔 연애 한번 변변히 못했지만, 시집 가고 나서는 그 누구보다도 호강을 하고 살았다 칠십년대에 자가용과 운전기사까지 부릴수 있었던 그런 애였는데, 왜 그리 허망하게 인생을 마무리 하게 됐는지 지금도 그애를 생각할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진정한 친구란 나이나 학벌,가지고 있는 환경에 지배 되지 않고 오직 서로간에 영혼이 통하고 함께 있으면 무조건 좋고 마음이 편한,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을수 있는,또 믿고 신뢰할수 있는 사이가 아닐까? 지난 몇년간 한국에서 살때,비록 나이들은 어렸지만 정말 마음이 통하던 몇몇의 젊은 친구들이 있었다.지금도 몇명은 서로 소식을 전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가끔 그들이 못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다.그들과 함께 다녔던 찻집과 빵집,식당들과 공원과 거리들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해 꿈속을 헤메고 다닌다.
언제 또 그들을 다시 만날수 있을지 지금은 아무것도 기약할수 없다.다만 동무생각이란 그 가곡을 입 속으로 조그맣게 불러 보면서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그리운 얼굴들을 그려 보며, 아직도 내게는 보고 싶은 동무 아니 친구들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내 삶은 살만하다고 자위해 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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