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들의 정부”라는 명언은 링컨 대통령이 남북 전쟁 중에 남긴 연설의 일부
남북전쟁(1861~1865) 기간 중 주전장(主戰場)터는 동부전선이었다. 전략적 중요성 보다는 인구 집중 지대였고 대립하는 양군의 중요도시가 많이 포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남, 북의 수도가 접근해 있었다. 북군의 수도 Washington D.C.와 남군의 수도 Richmond(Virginia주)는 불과 100마일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곳이었다. (참고: 한국 휴전선과 서울의 거리는 28mile) Washington D.C.를 관통하는 포토맥 강을 건너면 바로 적지인 버지니아 주 이었다. 결과적으로 남북의 수도공방전이 몇 번이나 시도되었으니 인명피해는 물론, 가산의 피해가 엄청났다는 것이다.
남북전쟁중 제일 유혈(流血)이 많았던 ‘게티즈버그 전투(Battle of Gettysburg)’도 동부전선 전투의 하나였다. 동부전선은 미국의 중동부를 세로로 막고 있는 아팔레치안 산맥과 대서양 연안의 중간에서 전개 되었는데 1862년 3월에는 북군이 남군 수도인 리치몬드 동남경계선 근처까지 침공을 하였으나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이 이끄는 주력부대의 저항으로 후퇴를 하였는데 리장군은 그 여세로 메릴랜드의 공략에 나섰다가 패하고 후퇴를 하게 되었다. 이후 7월에 들어서서 ‘리 장군’은 대북 대 공세를 시도하였으나 게티즈버그의 전투에서 패하고 후퇴를 하였다. 이러한 전세의 호전 기회를 타서 링컨 대통령은 9월에 역사적인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발표하였다. (63.1.1. 발효) 이후 전쟁은 전적으로 노예해방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치러지게 된다. 그간, 남군은 남북전쟁을 남부 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과 연방(U. S. A.)의 국가대 국가의 국익을 위한전쟁으로 이름 짓고 불란서나 영국으로 부터 원조를 받으려고 했는데 이 전쟁이 노예해방전쟁이라고 북군이 분명히 못 박자 불란서도 그렇고 영국도 모두 원조의사를 철회하였다.
그간 서부 전선은 북군의 우세로 일관되었다. 북군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남하하여 1862.12.31.~1863.1.2.에는 뉴올리언스를 점령하였다. 서부전선에서는 북군의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Grant) 장군의 공로가 컸다. 그랜트 장군은 테네시군 을 이끌고 장기전투인 빅스버그 전투(5.18.~7.4.)에서 남군의 중요 요새를 함락하였고 미시시피 강의 지배권을 완전히 확보하였으며 차타누가전투(11.23.~11.25)를 기해 남부 중심지 공략의 길을 터 놓았다.
1864년 3월 그랜트 장군이 북군의 총사령관으로 취임을 했다. 그랜트 장군은 종전의 북군 지휘관들과는 달라서 작전에 능하며 후퇴를 모르는 장군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지구력이 강하여 로버트 리(Robert Lee)장군이 이끄는 남군 주력 부대인 북 버지니아군을 계속 압박 할 수 있었다. 1865년 4월 3일에는 남부 연합의 수도인 ‘리치몬드’가 함락되었고 리 장군은 이어 1865년 4월 9일에 투항 하였다. 이로서 4년간이나 계속된 남북전쟁은 막을 내렸다.
1863.7.1.~7.3.사이에는 게티즈버그(Battle of Gettysburg) 전투가 있었는데, 남북전쟁에서 가장 출혈이 많았던 전투이며 남북전쟁을 북군에게 유리하게 만든 전환점이 되는 전투였다. 북부군 83,289명, 남부군 75,054명이 동원되었으며 사상자가 북에서 23,289명(중 전사 3,155), 남에서 28,000명 (중 전사자 3,500명)이나 난 전투였다. 하도 전사자가 많았으므로 그 전장터에 국립묘지를 만들어서 전사자들을 거기에 안장하고 동년 11월 19일에 낙성식을 거행했는데, 거기서 행한 링커대통령의 짤막한 연설이 세계적인 명연설로 이름이 남게 되었다. 통칭 Gettysburg Address라고 한다.
다음은 그 연설의 중요부분이다.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사상에 입각해서, 그리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을 신봉하는 새 나라를 이 대륙에 건국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나라, 또는 그 같이 태어나고 그 같은 믿음을 가진 나라들이 영구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인지를 입증하는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의 대규모 격전지가 되었던 싸움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 땅의 일부를,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이곳에서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마지막 안식처로서 바치고자 모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해 줘야 마땅하고 옳은 일인 것입니다… (중략)…우리들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신의 가호아래,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그리고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들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원문의 첫머리와 마지막부분은 다음과 같다.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중략)…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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