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부다페스트에 들렀다. 사실 부다페스트에는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할 게 너무 많다. 그래서 학술대회가 끝나자마자 한국외대 헝가리어과 유진일 교수의 안내로 부다 성(Buda Castle)과 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 등을 둘러보고 난 이후 곧바로 루더쉬(Rudas) 온천으로 향했다. 유럽 제일의 온천도시답게 부다페스트 시내에는 100여개의 온천이 있는데 그 중 바로크 양식의 시체니(Széchenyi) 온천이 유명하다. 이 온천은 일본의 벱뿌 온천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온천인데 실제로 보면 외관이 웅장하고 화려해 중세 왕궁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시체니 온천을 뒤로하고 16세기 때 터키인들이 개발한 루더쉬 온천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온천은 아직도 중세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유황온천이다.
저녁 무렵 헝가리에서 제일 유명한 군델(Gundel)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촬영 장소였던 이곳에서 헝가리 전통음식인 구이아쉬(Gulyás)를 주문했다. 원래 구이아쉬란 말은 ‘소치는 목동’을 의미한다. 헝가리 주변국인 체코와 독일 그리고 오스트리아에도 굴라시(Goulash)라는 음식이 있지만 이는 헝가리 구이아쉬에서 유래된 것으로 구이아쉬가 수프와 비슷하다면 굴라시는 걸쭉한 스튜에 가깝다.
과거 헝가리 목동들의 주식이었던 구이아쉬는 우리나라 육개장과 비슷하다. 구이아쉬를 요리할 때 사용하는 고기는 헝가리 회색소의 사태부분(다리)인데, 이 소는 주로 우랄산맥에서 서식하지만 헝가리에도 있다고 한다. 구이아쉬의 전통 요리법은 복잡도 하거니와 요리시간이 많이(약 3시간) 걸려 손님이 많은 부다페스트의 일반 레스토랑에서는 그 고유한 맛을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의 미식가들은 전통그대로의 구이아쉬 맛을 즐기기 위해 헝가리 대평원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간다.
저녁 식사 후 가랑비가 내렸지만 아랑곳 않고 다뉴브강을 따라 오가는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과 함께 헝가리 토카이(Tokay) 와인을 한잔하며 다뉴브강의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강국 헝가리는 토카이 와인으로 유명하다. 헝가리 최고의 화이트 와인 생산지인 토카이는 헝가리 북부지방에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토카이 아수는 세계 3대 스위트 화이트 와인으로 손꼽힌다. 와인의 나라인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토카이 와인을 ‘왕의 와인, 와인의 왕’이라 극찬했다.
토카이 와인은 수확기가 지나 곰팡이가 하얗게 핀 청포도를 가지고 와인을 담근다. 수확기가 지나면 서리가 내려 포도 알이 쪼그라들고 이때 하얀 곰팡이가 생기면서 포도에 귀부병(貴腐病, noble rot)이 생기는데, 이 곰팡이는 포도의 수분을 빼앗기 때문에 포도의 당도는 더욱 더 높아진다. 이처럼 귀부병에 걸린 포도만을 모아 즙을 짜낸 포도원액을 에센시아(Essencia)라고 하고 또 에센시아를 다른 일반 청포도 즙과 일정비율 섞어서 발효시킨 것을 아수(Aszu)라고 한다. 에센시아는 과거 헝가리에서 천연항생제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약국에서만 판매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추출한 포도즙을 오크통에서 발효시킨 후 병에 넣어 장기간 보관하는데 늦게 수확한 포도를 많이 넣을수록 즉 에센시아의 비율이 높을수록 오래 숙성시켜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코르크 마개를 열면 단맛을 내는 호박색의 토카이 와인이 나온다. 토카이 와인의 등급은 푸토니(puttony 또는 putt: 포도를 수확할 때 사람들이 등에 지고 포도를 운반하는 소쿠리)를 사용하여 putt 3-6으로 구분하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당도가 높고 오래 숙성된 것이다.
몇 년 전, 라슬로 쇼욤(Laszlo Solyom) 헝가리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 만찬에 육개장과 토카이 와인이 제공되었다. 물론 상대국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헝가리 와인이 준비되었겠지만 미국 백악관의 경우 국빈만찬 때 미국와인만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다소 아쉬움이 있다. 물론 미국도 50년대에는 미국와인이 아닌 유럽와인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1963년 린던 존슨(Lyndon Johnson) 제36대 미국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부터는 유럽와인 대신에 미국와인만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도 미국처럼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하는 외국정상들에게 우리의 전통음료를 대접하면서 우리문화를 널리 알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외대 교수/ 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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