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망령되고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신을 위한 작곡가 바흐의 음악이 간통영화에 쓰이면서 일종의 변태성 가학적 쾌감마저 일으키게 만들다니.
“페드라…” 앤소니 퍼킨스의 비명과도 같은 절규가 느닷없이 터져 나오면서 이어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비극적 기타음악과 함께 화면에 칼질을 하듯 ‘Phaedra’라는 영화 제목이 사납게 나타난다.
나는 이 영화를 대학생 때 서울 단성사에서 보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얄궂고 에로틱한 두 남녀의 사랑에도 빨려 들었지만 무엇보다 구타당한 듯한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이 영화 마지막에 사용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오르간 음악이었다.
그리스 선박 왕 타노스(이탈리아 배우 라프 발로네-‘대부’ 3편의 신부 역)의 두 번째 부인 페드라(멜리나 메르쿠리-후에 그리스 문화상 역임)와 타노스의 첫 부인의 아들 알렉시스(퍼킨스)의 비극적이요 관능적인 불륜의 사랑을 그린 ‘페드라’(1962·사진)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멜로물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거의 무섭기까지 한 육감적인 얼굴과 깊은 음성을 지닌 메르쿠리의 과도할 정도의 극적인 연기와 그리스와 런던과 파리에서 찍은 뛰어난 흑백촬영 그리고 불길하게 로맨틱한 음악과 저주 받은 사랑과 죽음으로 가득한 내용 등으로 인해 평범한 멜로물의 영역을 뛰어넘고 있다.
‘페드라’는 메르쿠리의 남편 줄스 대신이 감독했는데(여기서 연출력이 다소 무겁다) 둘은 이 영화 전의 빅히트 작 ‘네버 온 선데이’에서도 명콤비를 이뤘었다. ‘페드라’는 유리피데스가 신화를 바탕으로 쓴 연극이 원작이다. 페드라는 테세우스의 아내인데 테세우스의 다른 아내가 낳은 히폴리투스를 사랑, 비극을 맞는다.
내용이 매우 극적이어서 소설과 오페라와 영화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유진 오닐의 연극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도 이 얘기를 현대화한 것이다. 이 연극은 지난 1958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여기서도 퍼킨스가 계모인 소피아 로렌과 사랑을 나눈다(로렌은 퍼킨스보다 두 살 아래다). 그런데 퍼킨스는 ‘이수’에서도 연상의 여인 잉그릿 버그만과 사랑을 한다.
‘페드라’는 지난 2007년 독일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제에 의해 2막짜리 오페라로 만들어졌는데 이 오페라는 지난달 오페라 컴퍼니 오브 필라델피아에 의해 미국 초연돼 호평을 받았다.
페드라는 자기를 열렬히 사랑하나 일밖에 모르는 타노스의 부탁으로 런던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알렉시스를 그리스의 히드라섬에 있는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런던에 도착한다. 둘은 만나자마자 이상야릇한 눈길을 나누는데 이미 이 첫 시선에서 비극의 싹이 잉태된다. 페드라가 그리스를 떠나기 전 죽음의 사신을 닮은 그의 유모 아나가 “흉몽을 꾸었으니 가지 말라”고 한 간청이 신탁이 된 셈이다.
페드라와 알렉시스는 알렉시스가 ‘내 애인’이라며 탐내는 자동차 판매점에 진열된 애스턴 마틴(제임스 본드 차다)을 구경한 뒤 이어 페드라의 샤핑 차 파리로 간다. 여기서 둘은 비오는 날 밤 기어코 뜨거운 정사를 나눈다. 한데 뒤엉킨 두 남녀의 나신과 파이어 플레이스의 불길 그리고 벽에 걸린 성화와 유리창 위로 흐르는 빗물 등을 소프트 포커스로 찍어 감질나게 에로틱하다.
알렉시스를 다른 선박 왕의 딸과 정략 결혼시키려는 타노스의 결정에 반발한 페드라가 자기와 알렉시스의 관계를 폭로하면서 가족 비극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나와 함께 가자”는 페드라에게 “난 당신이 죽기를 원해. 난 이제 24세일뿐이야”라고 답한 알렉시스는 애스턴 마틴을 타고 해안 좁은 절벽 길을 초고속으로 달린다. 이 때 그가 트는 음악이 바흐의 ‘오르간을 위한 팬터지와 퓨그 G단조’다.
타노스의 반지 낀 손으로 사정없이 맞아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알렉시스는 목청을 다해 “라라라라” 하며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장렬한 음악을 따라 부르면서 “존 세바스찬 인 퍼슨. 유 원트 리틀 뮤직. 굿바이 그리스, 시”라고 소리 지른다. 알렉시스는 계속해 “고 걸 고. 대츠 마이 걸. 리틀 배니스먼트 뮤직. 나싱 벗 베스트 포 어스”라며 바흐를 찬양한 뒤 “페드라...”하고 울부짖으면서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페드라는 수면제를 먹은 뒤 검은 안대를 끼고 침대에 눕고 마지막 장면은 타노스가 검은 옷을 입은 아낙네들 앞에서 침몰한 ‘페드라호’의 사망자 명단을 읽으면서 끝난다. 죽음이 즐비하다. DVD로 나왔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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