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시엽
W.A. 고무 실험실장
20대의 한 외국인 여성이 좌판에 놓인 토마토를 열심히 고르고 있었다. 밋밋한 얼굴 생김새에 비해 유난히 우뚝 솟은 그녀의 서구적 콧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토마토를 한 손에 들고 요모조모로 세밀히 뜯어보던 그녀가 뜻밖에 유창한 한국어로 중얼댔다.
“왜 이렇게 못생겼지?”
“어! 한국분이시네요? 자연산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면 안 되죠. 못생겨도 맛은 끝내줍니다.”
내가 말을 받자 그녀가 예의 큰 코를 한 손으로 가리고 호호 웃었다. 주말마다 개장하는 UCI 대학 인근의 자연산 농산물 장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예전에는 한 눈에 척 보고 한국인임을 백발백중 알아맞혔는데 요즘에는 가끔 빗맞는다. 거리에서 뿐만이 아니라 요즘 TV나 잡지에 등장하는 한국인도 곧잘 서양 사람으로 착각한다. 서구형의 큰 코가 족집게처럼 동족을 가려내던 나의 예리한 분별력을 혼란시킨 탓이다.
미용성형 붐을 타고 한국이 성형왕국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훼손치 않고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효경의 가르침은 고리타분한 옛말이 되었다. 요즘에는 딸 고교 졸업 기념으로 코 성형을 해주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 제 잘난 맛에 산다지만 외모만은 남들이 잘났다고 추어주어야 살맛이 나는 법이다.
미의 기준이 서구화되면서 한국인의 관상학적 특징마저 홀대를 받고 있다. 과거에는 서구적 용모는 기피의 대상이었다. 여자 코가 서양 코처럼 오뚝하면 팔자가 세다고 했고 서양식으로 옴폭 들어간 눈은 음험한 인상을 준다고 싫어했다. 큰 키는 자랑거리는커녕 한복 맵시나 그르치는 감출 수도 없는 흠이었다.
미용성형 붐은 경제적 여유로 성형이 대중화된 탓도 있지만 외모가 취직, 결혼, 사회생활 등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국적 풍토에서 비롯되었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보다 나은 용모가 생존경쟁에 유리하다면 성형 유혹에 귀가 솔깃해질 만도 하다. 이러다가 인공조미료 MSG가 음식 맛을 통일시켜버리듯,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통제 불능의 자동차 같은 성형 붐이 한국인의 용모를 하나로 통일시키면 어쩌나 불안해진다. 이른바 ‘생얼’ 들이 단합해 “생긴 대로!”를 외치며 역풍을 일으켜 순풍에 돛 단 성형 붐에 제동이라도 걸었으면 좋겠다.
성형이 크게 유행하는 또 다른 이유로 한국인 특유의 ‘빨리 빨리’ 기질도 한 몫을 거들었다고 믿는다. 오랜 투자 기간이 걸리는 내면 가꾸기는 포기하고 성형으로 단시간에 외모를 바꿔 자신의 주가를 높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세월에 독서하고 교양 쌓으며 잘 보이지도 않는 내면을 가꾸겠는가? 공들여 가꾸어 보았자 내보여주기도 힘들뿐더러 보여 달라는 사람도 별로 없는 내면이다. 인품 콤플렉스를 느껴서 외모처럼 경쟁적으로 인품을 갈고 닦는 인품성형 붐이 일어나면 좋으련만……. 외모가 판치는 세상은 공허하다.
성형이라면 흔히 코 세우고, 쌍꺼풀 만드는 등의 미용성형을 떠올리는데, 그 것은 성형외과의 한 분야에 불과하다. 성형의 목적은 모든 신체 부위의 기형이나 손상을 교정하거나 재건해서 정상적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용모 경쟁을 하듯 평균 수준의 멀쩡한 얼굴마저 뜯어고치는 지나친 성형 붐은 기형적 현상이다.
인간이 자연의 한 구성원이라면 성형도 자연 파괴행위가 아닐까? 천혜의 자연 유산이 많은 캐나다 여행 때 느낀 점이다. 태고의 신비가 느껴지는 자연 속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원시림 사이를 꿰뚫어 놓은 포장도로, 또 그 위를 내달리는 관광버스와 관광객인 나 같은 인간들이었다. 인간이 자연에 베풀 수 있는 최상의 은총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자연은 자연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창조주가 지어낸 최고의 걸작이라는 인간이 인간에 의해 마구 훼손당해도 인간은 수수방관이다. 인간은 100% 인공(?)이므로 개선의 여지가 많은 존재이기 때문일까? 자칫 지나치면 자연미의 원천이 되는 조화와 균형이 깨져 어딘가 어색해 보이고 눈에 거슬리는 게 성형이다. 내가 미용성형 전문의라면 진료실 입구에 다음의 경구를 크게 써 붙이겠다. ‘과유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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