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울지마, 톤즈’로 널리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는 선교지인 남수단, 톤즈에서 가난의 극한을 경험했다. 척박한 자연환경에 20여년 내전까지 겹친 그곳 주민들의 삶은 삶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 민족이 가난하던 시절, 보릿고개를 나무껍질과 칡뿌리로 넘겼지만 톤즈에는 껍질 벗겨먹을 나무도 칡도 없다.
이태석 신부의 사역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유엔 사무국 요원으로 케냐에 주재하던 이재현씨 가족이 그곳을 방문했었다. 상상을 넘어서는 가난과 그런 주민들을 품어 안는 이 신부의 헌신에 감동한 그는 당시 책을 펴냈었다. 그 책에 나병환자 검진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소녀가 엄마 손을 잡고 검사를 받으러 왔는데 다행히 나병이 아니라서 신부님은 매우 기쁘셨단다. 그런데 그 엄마는 웬일인지 고개를 떨구며 실망어린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유인즉 나병으로 판정되면 약간의 배급을 받을 수 있는데 아니라서 그랬던 것이다.”
딸이 나병이기를 바라는 엄마의 참혹한 심정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천형, 나병을 오히려 원하는 상황은 가난이 아니다. 지옥이거나 절망이다.
세상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또 하나 - 아마 감옥일 것이다. 그런데 감옥행을 오히려 원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상황은 심각하다. 요즘 미국에서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농담이지만 이런 자조적인 표현이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이 문제다.
천문학적 예산적자로 재정난이 심각한 연방·주정부가 사회복지 부문 예산을 계속 깎아내면서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진 결과이다. 인구의 28%를 차지하는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기로 접어들면서 소셜시큐리티, 메디케어 등 노후 복지문제는 특히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인터넷을 떠도는 ‘감옥과 양로원’이라는 글이 좋은 예이다. 이런 내용이다.
“노인들은 감옥으로 죄수들은 양로원으로 보내자. 그렇게 하면 두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된다. 우선 노인들은 쉽게 샤워도 하고 취미생활과 산보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처방약, 치과치료, 일반진료 등을 무제한 무료로 제공받고, 하루 24시간 모니터하니 응급상황이 생기면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침대 시트는 일주일에 두 번 세탁되고, 옷은 모두 다리미질해주고, 식사와 간식은 방으로 가져다 줄 것이다. 불만사항이 있으면 미국인권자유연맹이 나서서 싸워줄 것이다.
반면 죄수들이 양로원에 가면 식어빠진 음식을 먹고, 아무도 감독하지 않고, 샤워는 일주일에 한번뿐이고, 손바닥만한 방에 살면서 매달 5,000달러를 내야 할 것이다. 이래야 공정한 게 아닐까!” - 농담 반 진담 반의 지적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메일을 전달 또 전달한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250억 달러 재정적자로 예산이 대폭 삭감되어 학생, 교사, 공무원, 은퇴 노인 등 모두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이런 상황에 연간 죄수 한명에 들어가는 비용은 평균 4만7,000달러(2008~ 2009 회계연도 기준)이다. 치과, 정신과, 의약품 등 의료비용이 1만2,442달러. 힘들게 일해도 의료보험 살 여력이 없는 수많은 서민들이 보면 “해도 너무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다 보니 병 치료 받겠다고 은행 강도가 되는 케이스까지 실제로 생겼다. 2주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발생한 ‘1달러 강탈’ 사건이다.
제임스 버론(59)이라는 남성은 코카콜라 배달직원으로 17년간 일하다가 3년 전 감원되었다. 불경기에 나이가 많으니 취직이 될 리가 없었다. 파트타임 일로 겨우 연명하는 데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장애자 생계보조, 소셜 시큐리티 조기 수령 등을 알아봤지만 그는 자격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떠오른 생각이 “차라리 감옥에 가자. 가서 무료로 치료를 받자”는 것이었다. 지난 9일 아침 그는 은행에 가서 텔러에게 “은행 강도다. 1달러를 내놔라!”라는 쪽지를 전하고는 소파에 앉아서 경찰을 기다렸다. 수감되자마자 간호사들이 그를 살폈고 의사 진료일정도 잡혔다. ‘바른 선택’이었다고 그는 자부하고 있다.
남수단의 문제가 철저한 가난이라면 미국의 문제는 균형 상실이다. 정치권의 이해, 이익집단의 입김 등이 너무 작용해 기형적으로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 미국사회가 균형을 되찾아야 하겠다. 유권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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