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탈리턴 쌍둥이들처럼 그의 매력에 사로잡히면 그것을 거의 깨닫지 못했다.’ 스칼렛 오하라와 렛 버틀러 그리고 옛 미 남부의 파괴를 그린 대하 서사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이렇게 시작된다.
6월은 마가렛 미첼이 이 소설을 쓴지 75주년이 되는 달. 그래서 지금 미첼 여사가 살면서 이 글을 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각종 기념행사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퓰리처상을 받은 이 소설은 현재도 매년 북미에서만 7만5,000부가 팔려 나가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책이다.
나도 이 소설을 한국에서 기자생활 할 때 영문 페이퍼백으로 읽었는데(영화를 먼저 봤다) 방대하면서도 도도한 흐름과 개성이 뚜렷한(그 중에서도 스칼렛이 오매불망 못 잊는 이상주의자인 애슐리 윌크스가 마음에 들었었다) 인물들 그리고 로맨스와 갈등과 극적인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얘기 솜씨에 휘말려들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었다.
미첼 여사는 이 소설을 10년에 걸쳐 썼는데 처음 제목은 ‘올드 사우스의 사본’으로 스칼렛의 이름도 팬시였다. 여사는 지난 1949년 애틀랜타에서 48세에 택시에 치여 숨졌는데 이 소설이 그의 유일한 저서다.
미첼 여사는 4피트11인치의 단구에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여자였다. 반드시 체구와 소설 규모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단아한 모습의 작은 숙녀가 이렇게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듯이 힘차고 거대하며 또 정열적인 소설을 썼다는 것이 거의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다.
이 소설은 지난 1991년 알렉산드라 리플리에 의해 ‘스칼렛’이라는 제목의 속편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혹평을 받았다.
이 소설은 지금도 흑인에 대한 편견적 묘사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 스칼렛의 충직한 하녀 매미와 또 다른 하녀 프리시가 거의 희화화 하다시피 우직하고 맹하게 묘사됐는데 이들은 영화에서도 그렇게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매미 역을 맡은 해티 맥대니얼은 흑인 사상 최초로 오스카상(조연)을 받았다.
한편 미첼 여사는 자기에 대한 이런 비판에 대해 “나의 흑인 인물들은 내 책 속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라고 반박했다.
미국 영화는 단 2편뿐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요 다른 하나는 나머지 모든 다른 영화들을 가리킨다.
작품과 감독상 등 총 10개의 오스카상을 받은 이 영화는 명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의 ‘원맨 쇼’와도 같은 작품이다. 그는 엑스트라에서 감독(빅터 플레밍)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동원된 총 1만2,000여명의 인원을 마치 신이 인간을
부리듯 일사분란하게 조종,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나는 지난 1987년 12월 취재차 영화 원전의 본고장인 애틀랜타를 찾아갔었다. 도착하자마자 관광 안내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여안내원이 “‘타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러 왔지요”라며 웃었다.
‘타라’는 스칼렛의 삶의 본향인 대규모 목화농장의 이름이다. 그러나 ‘타라’는 애틀랜타에 없었다. 타라를 비롯해 애슐리의 농장 ‘트웰브 옥스’와 애틀랜타역 등 영화 속의 모든 장소와 건물은 전부 LA 인근 컬버시티에 있는 셀즈닉 스튜디오에서(이 름만 바뀐 채 지금도 있다) 찍었기 때문 이다.
‘GWTW’의 호걸 주인공인 렛 역의 연기를 능글능글하게 해내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른(상은 ‘굿 바이, 미스터 칩스’의 로버트 도냇이 탔다) 클라크 게이블의 모습도 볼만하지만 이 영화는 스칼렛 역의 비비언 리(사진)의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소설과 영화의 불굴의 힘찬 생명력은 리가 표현한 스칼렛에게서 나온다. 그는 어떤 역경과 슬픔과 버림받음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당찬 여인이다. 렛에게서 버림받고도 “내가 돌아갈 ‘타라’가 있다”면서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라며 억척스런 낙관론을 울부짖는 스칼렛의 마지막 대사는 차라리 가공스런 것이다. 리는 이 역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받았다.
영화에서 스칼렛이 자기를 버리고 떠나가는 렛에게 “난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며 칭얼대자 렛이 내뱉은 말 “프랭클리 마이 디어, 아이 돈 기브 어 댐”(솔직히 말해 이 사람아, 내가 알게 뭐야)의 ‘프랭클리’는 셀즈닉이 영화를 위해 붙인 것이다.
당시는 영화에서 ‘댐’이라는 말을 못 썼는데 셀즈닉이 검열 당국에 벌금을 미리 물고 이 말을 썼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가톨릭으로부터 금지작 딱지를 맞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수 없이 보아도 물리지 않는 불후의 걸작으로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이 비감토록 로맨틱하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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