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중순 오리건(Oregon) 주에 있는 크레이터 레이크(Crater Lake)를 가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여행한 곳이라 그런지 호수의 신비함에 금방 매료되었다. 특히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 천지(天池)와 비슷한지라 두 호수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었다.
오리건 주에서 유일한 국립공원인 크레이터 레이크 공원은 약 7,700년 전 3,660m이었던 마자마(Mazama) 산이 대폭발하면서 생긴 칼데라(caldera)호, 즉 크레이터 레이크 호수를 중심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 호수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건 1853년 6월 12일, 금광을 찾던 존 힐만(John Wesley Hillman)을 포함한 3명의 탐험가들이 이곳에 도착하면서 부터이다. 그들은 이 거대한 호수를 보고 “우리가 본 것 중 가장 푸른 호수(This is the bluest lake we’ve ever seen.)”라고 언급했으며, 호수의 이름도 ‘깊고 푸른 호수 (Deep Blue Lake)’라고 지었다. 하지만 당시 금광을 찾는데 혈안이었던 그들은 이내 이 호수의 존재를 잊고 만다. 그 후 1865년,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이 이 호수를 다시 발견하면서 세상에 그 위엄을 드러낸다. 그 후 호수의 이름은 ‘푸른 호수(Blue Lake)’ 그리고 ‘장엄한 호수(Lake Majesty)’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크레이터 레이크(Crater Lake)’로 명명되었다.
최대 깊이가 594m인 크레이터 레이크는 미국에서 제일 깊은 호수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7번째다. 이 호수의 규모는 백두산 천지보다 5.76배 크고 호수의 전체 둘레도 32.4km나 되어 천지의 2.6배에 해당한다. 크레이터 레이크의 호수 물은 수천 년 동안 오로지 비와 산 위에 쌓인 눈이 녹아 호수에 채워졌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 중 하나이다. 원래 크레이터 레이크와 백두산 천지에는 물고기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크레이터 레이크에는 1888년부터 1942년 사이에 방사된 여러 종류의 물고기 중에서 무지개 송어와 연어만이 살아남아 서식하고 있고 백두산 천지에는 1984년 북한이 방사한 천지산천어가 서식한다. 또한 천지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달문(闥門)이라는 출수구가 있어 여기서부터 호수 물이 흘러내려 장백폭포를 이루면서 그 이후 쑹화강으로 유입되는데 반해 크레이터 레이크는 출수구가 없어도 수면이 높아지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유인 즉, 1년 중 수증기로 증발되는 양만큼 눈과 비에 의해 채워지기 때문이다.
6월 중순인데도 크레이터 레이크에는 밤에 눈이 내렸다. 두꺼운 외투를 겹쳐 입고도 밤중에 통나무집(cabin) 밖에서 3분 이상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추웠다. 다음 날 새벽에 호수로 올라가 ‘산 위 호수에서의 일출’을 감상했다. 일출의 장관을 본 후 숙소로 내려와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다시 호수로 올라갔다. 호수의 남쪽은 햇빛이 내리 쬐여 따스한 봄날 같아 눈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조금 더 돌아가다 보면 비가 내리면서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또 그 반대쪽을 돌아갈 때면 어른 키의 두 배 이상 길가에 눈이 쌓여있고 진눈깨비가 세차게 날리고 있었다. 마치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춘하추동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자동차로 호수 주위를 도는 림 드라이브(Rim Drive)는 도로위에 쌓인 눈 때문에 일부구간 통제되어 호수 전체를 돌 수 없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변덕스런 날씨에 경외감까지 들었다. 이윽고 자동차를 주차하고 오솔길(trail)을 따라 호수면으로 내려갔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호수의 신비한 빛깔에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호수 소개 책자에는 호수의 물 색깔을 ‘강렬한 블루(intense blue)’ 즉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색’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하늘의 구름과 주위 환경이 변함에 따라 호수의 색깔도 같이 변해 잠시도 호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보트가 정박해 있는 호수면에 도착하자마자 물속을 살펴보고는 단숨에 그 호수 물을 들이켰다. (캬~아!) 세상에서 가장 푸르고 가장 깨끗한 물이었다.
백두산 관광이 개방된 이후, 언젠가 TV방송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일을 기원하며 백두산 천지의 물을 떠다 한라산 백록담에 붓고는 제를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필자도 크레이터 레이크의 신성한 물을 작은 페트병에 여러 병 떠서 그동안 알고 지내던 고마운 분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한국외대 교수/ 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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