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 - 20세기 뮤지컬의 거장으로 꼽힌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 20세기 후반의 빼어난 뮤지컬들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윌리엄 로이드 웨버는 오르간 주자이자 작곡가로 런던 음대 학장을 역임했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부모의 음악적 재능은 그대로 두 아들에게로 이어져서 그의 동생 역시 유명한 첼리스트이다.
아들들이 음악을 계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아버지는 상당히 흐뭇했을 법하다. 특히 맏아들 앤드류가 록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로 스타가 되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 서넛이었다. 세상의 박수갈채를 받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칭찬을 쏟아내야 맞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앤드류가 처음 뮤지컬 작곡에 관심을 보였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노래를 한곡 들려주었다. 리처드 로저스의 뮤지컬 ‘남태평양’에 나오는 ‘어느 황홀한 저녁’이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오클라호마’ ‘왕과 나’ 등 많은 히트 뮤지컬을 작곡한 로저스를 그는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아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면서 “이건 완벽한 멜로디다! 네가 만약 이 비슷한 걸 작곡해낸다면 너는 정말이지 뭔가를 이루는 게 될 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앤드류는 여러 뮤지컬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끝내 아버지의 칭찬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한번도 내게 와서 ‘어느 황홀한 저녁’에 필적할만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그는 서운한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세상의 아들들이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은 아버지의 인정이라고 한다. 17세기 프랑스의 우화·동화작가 라퐁텐은 “온 세상을 기쁘게 하는 것과 자기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신문사 동료의 아들이 지금 한국에 나가 있다. 영어봉사 장학생 프로그램(TaLK)으로 경상남도, 합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최근 그 아버지가 한국 출장길에 아들을 찾아갔다고 한다. 몇 달만에 만나 반가웠던 부자는 며칠 후 끝내 서로 언성을 높여 어정쩡하게 헤어지고 말았다. 그 동료는 말했다.
“우리 남편과 아들은 2박3일이 한계예요. 그 이상이 되면 꼭 부딪쳐요. 남편은 아들의 이런저런 점들이 못마땅해서 지적을 하고, 아들은 아빠의 잔소리를 묵묵히 듣다가는 어느 순간 발끈하고 말지요”
비슷한 일은 거의 집집마다 일어난다. 남매가 모두 타주에 사는 한 친구 가족은 지난여름 하와이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맏이인 딸이 비행기 표, 호텔, 그곳에서의 여가활동 등을 4인용으로 완벽하게 예약해뒀는데 결국 세 사람만 다녀와야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바탕 부딪치고는 아들이 여행을 안가겠다며 혼자 남은 것이었다. “남편과 아들이 만났다 하면 부딪쳐서 중간에서 내가 못 살겠다”고 친구는 말한다.
아버지들은 딸보다는 아들, 둘째 아들보다는 맏아들에 대해 특히 민감한 것 같다. 정신과 의사들은 남성들이 “아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자신의 분신이니 그만큼 기대가 크고, 기대가 큰 만큼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아울러 세대와 시대의 차이도 한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아버지 로이드 웨버는 가난하게 자랐다. 배관공인 그의 아버지가 오르간 광이었던 것이 그로서는 행운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오르간 소리를 듣다가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음악을 한 그가 유복한 환경에서 아쉬울 것 없이 공부하는 아들을 보며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민 1세 아버지들이 2세의 아들들을 보며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저 좋은 환경에서 왜?”하는 마음이다.
6월 셋째 일요일, 아버지날이다. 꽃사고 선물 사느라 샤핑몰이 벅적벅적한 어머니날과 달리 아버지날은 보통 조용하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선물’이라고는 전화 한통, 그것도 콜렉트 콜이라는 게 우스갯소리이자 현실이다. 사회가 권위를 보장해주던 이전 시대와 달리 지금의 아버지들은 외롭다. 아버지들이 대신 먼저 선물을 하면 어떨까? 칭찬, 인정 혹은 이해라는 선물들이다. 특히 아들들에게는 아버지의 칭찬·인정만큼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도 없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