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말라고 해도 가고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것이 세월이라지만, 벌써 이 해도 반으로 접어 든 6월이다. 그 해 6•25로부터 61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내 나이 21살이란 그해, 의용군으로 끌려가는 불운의 그물 망울을 빠져나가기 위해 용산 교통 병원에서 폐결핵 말기 X레이 사진 한 장을 가방에 챙겨 넣고는 내 고향 통영으로 길 떠난 그 천리 길! 문둥이 시인 한용운의 ‘보리밭 길’의 시구처럼, 쩔뚝거리며 걸어가던 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쓰린 추억이 아직도 선하다.
그 해 6.7월은 유난히도 더웠다. 무주구천동 고개 나루를 넘어 하동포구로 넘어 가는 산자락에서, 그렇게 따갑게 울어 재끼던 매미 소리가 아직도 내 귀전에 쨍쨍 울리고 있는데 이 곳 미국 하고도 숲이 우거진 캘리포니아에는 매미의 서식처가 아닌지, 아니면 미국 매미는 울음을 울 줄 모르는 곤충인지 6월의 뙤약볕이 내리 쪼이는데도 울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 땅 한 들판에서 할미꽃같이 핀 내가 한 여름철 따갑게 울던 두고 온 그 땅의 매미 소리를 더욱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6월의 태양 볕이 차창 밖에 이글거리고 있는 오후, 나는 스타박스에 커피를 사러 간 막내 놈을 기다리며 패신저 좌석에 우두커니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이민 세월 35년을 회상하고 있다. 내가 이민 온 게 잘 한 짓인지, 잘 못 온 것인지의 상념이 시계추처럼 오가고 있을 때 내 차 후드(hood)를 똑딱똑딱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커피점 옆 동물원에 들렀다 오는 길인지 강아지 한 마리를 끌고 있는 70살쯤으로 보이는 백인 할머니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서 있다. 그리고는 이내 내가 앉아있는 차창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창문을 열었다. 그 여인은 나에게 “괜찮으냐?” 고 묻는다. 여인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때, 그는 내가 앉아 있는 좌석 등받이를 손으로 만지며 “덥지 않느냐?”라고 묻는다. 그제 서야 미국인 특유의 친절과 남을 배려하는 행위인 것을 알아차리고 “고맙다. 괜찮다.”고 대답하자 그제 서야 강아지를 차에 태우고 사라져 갔다.
그 여인이 떠나 간 후, 나는 그녀의 눈에 비춰졌을 나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 보았다. 그 첫째가 만일에 그녀의 자식들이 그녀와 같이 살던 생활의 울타리에서 벗어 나,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처지라면 그녀가 나를 보는 시각은 어느 불호자식이 아버지 달인 이 6월 염천에 동양인 오라버니를 저렇게 차 속에 팽개쳐 놓았을까 하는 분노 어린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잘 살든 못 살든 제 나라에서 등 붙이고 살 것이지, 왜 미국 당으로 건너와서 나날이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노인복지 예산의 한 부분을 갈아 먹는 기생충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반 이민 전서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이 땅에 와서 20년 넘게 가게를 운영 하면서 번 수입만큼 꼬박꼬박 세금을 내었음으로 해서 그에 해당하는 정당한 은퇴연금을 받고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 여인이 살아지고 난 뒤, 미국 아줌마와 이 애비 사이에서 어떠한 대화의 한 토막 연극이 벌어졌는지를 알 리 없는 막내가 커피 잔을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운전석에 털썩 주저 안더니 바로 집을 향해 차를 몬다. 나는 운전대를 잡은 막내의 손을 힐끗 쳐다보았다. 6살 꼬마일 때, 이 애비의 손을 꼭 잡고 이민 길을 졸졸 따라왔던 꼬마의 그 고무공 같이 말랑말랑 하고 보드라웠던 그 손이, 이제는 까칠한 고목 등걸의 포피 같이 거칠고 큰 손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세월의 무게를 또 한번 생각케 하는 현상이기도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41년 세월 동안, 단 하루도 우리 곁을 떠나 본 적이 없는 막내. 제 바로 위형과는 7살이란 나이 차의 늦깎이로 태어난 막내! 그래서 어리광으로 자란 그인데다가 애미 애비의 과잉보호로 자라 온 그이기에, 중, 고생일 때 이민 온 제 누나나 형들에 비해 미국의 자유분방한 풍조에 쉽게 물들었었다. 그 때문인지 부모에 대한 말씨나 행동에 있어서 많은 부분 우리의 심기를 상하게 할 때가 많은 그를 바라 볼 때마다, 이민에 대한 회의를 느낄 때가 있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두고 온 그 쪽 한국 땅에서도 부모를 대하는 자식들의 호심이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땅에 떨어져 가고 있는 현실을, 이민 땅 이곳에서 바라보면서, 적어도 아버지 달은 물론이거니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식들로 부터의 존대를 받고 싶은 욕심을 부려 본다. 하지만 그 때 마다 내 귓전에 들려 어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는 그 옛적에 가고 안 계시는 아버지의 소리인 것이다. 그 분에게 몹쓸 청개구리였던 내 귓전에 들려오는 “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게야.” 라는 바로 그 소리인 것이다.
(아동극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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