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와 낭만의 음악가 브람스의 DNA는 멜랑콜리이다. 낭만의 본질이 무한한 정열적인 동경일진대 우리가 브람스의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곁에서 속삭이는 듯한 멜랑콜리는 브람스의 어쩌지 못할 인자일 수밖에 없다. 고향 함부르크가 있는 북독의 날씨와 그의 멜랑콜리를 연결시키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혼란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들끓었던 브람스는 정열을 부자연스런 것이요 예외로 생각, 항상 정열을 자기 안에서 밖으로 내 쫓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시대의 조류인 낭만주의를 외면할 수 없었던 브람스는 이것을 고전주의의 엄격한 형식으로 중화시키려 했다. 어둡고 우울한 서정적 따뜻함과 장엄한 스타일의 음악가인 브람스를 대립과 갈등의 음악가요 고전적 낭만파라고 부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브람스는 또 아름다움보다 완전을 추구한 사람으로 다분히 학구적인데 그의 음악은 가슴을 엄습하면서도 쉽게 파악하기가 힘든 묘한 이중성을 지녔다.
브람스는 마음 문을 꽉 닫아 건 내성적이요 과묵하며 무뚝뚝하고 유아독존식(실내악을 연주할 때도 독주하듯 했다)이었는데 요즘 잰 스와포드의 브람스 전기 ‘요하네스 브람스: 전기’를 읽으면서 이런 성격은 그의 성장과정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의 여성관은 ‘처녀 아니면 창녀’였는데 이는 브람스가 10대 때 함부르크의 선원들이 드나드는 싸구려 색줏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얻은 경험 때문이다. 젊었을 때 간구하는 듯한 푸른 눈의 금발 미소년 모습에 나긋나긋한 신체를 가졌던 브람스(사진)가 어른이 돼 창녀를 줄곧 찾아다니면서도 결혼은 안 한 까닭도 이런 성장과정에 기인한다.
브람스는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이렇게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궁색한 집안 처지와 색줏집의 타락 대 철저한 음악교육과 독서 그리고 예술적 이상의 대립상황 하에서의 성장과정이 그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브람스의 올림피언적 업적이라 불리는 음악이 그의 4개의 교향곡이다. 평생을 ‘리틀 베토벤’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해 ‘베토벤 콤플렉스’에 시달린 브람스는 이 때문에 제1번 교향곡(C단조)을 43세가 돼서야 작곡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브람스를 위대한 교향곡 작곡자로 선견한 사람은 브람스가 사랑한 자기 스승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로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였다. 그리고 슈만도 브람스의 피아노곡을 ‘베일에 가린 교향곡’이라고 말했다. 클라라와 슈만은 브람스가 20세 때 그를 처음 만나자마자 ‘하늘에서 보낸 사람’이요 (음악의) ‘세례 요한’이라고 찬양했다.
브람스의 교향곡은 제1번과 제2번(D장조) 그리고 제3번(F장조)과 제4번(E단조)이 각기 대조적 쌍을 이루는데 고전적 형태 안에 브람스 특유의 염세적 낭만을 지니고 있다.
제1번은 어둡고 영웅적인데 베토벤의 영향을 뚜렷이 감지할 수 있다. 이 곡뿐 아니라 대중의 인기를 가장 크게 받고 있는 제3번에서도 베토벤의 흔적이 역연한데 브람스의 음악은 베토벤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을 지녔다고 하겠다.
제2번은 목가적이요, 밝으며 세기말적 분위기를 띤 제4번은 강한 개성을 지닌 거인풍(지휘자 한스 폰 뷜로)으로 브람스가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청중과 함께 들은 곡이다. 브람스의 교향곡은 마음을 뒤흔드는 강한 호소력을 지녔는데 뜨겁게 비감해 비가 오거나 우중충한 날씨에 들으면 제 격이다.
나도 체념적인 제3번을 좋아한다. 그의 교향곡 중 가장 짧고 아름답다. 풍성하고 다양한 하모니와 곱고 우울한 멜로디를 가졌는데 음색들은 나지막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민감하고 섬세한 리듬으로 꾸며진 곡으로 멜랑콜리 하면서도 정열적이다.
특히 심금을 울리는 부분이 포코 알레그레토의 제3악장. 몽롱하게 스위트하고
게으른 한숨이자 단념이요 애원 같은 주제가 ‘라라라, 라라라’ 하면서 막연한 그리움을 밟으며 만보하고 있다. 브람스의 DNA가 확연하다.
이 악장은 프랑솨즈 사강의 소설 ‘당신은 브람스를 좋아하십니까’를 영화로 만든 ‘이수’(Goodby Again·1961)에서 로맨틱하게 쓰여지고 있다. 가을 파리를 무대로 한 플레이보이 애인 로제(이브 몽탕)를 둔 40세의 폴라(잉그릿 버그만)와 25세의 필립(앤소니 퍼킨스)의 메이-디셈버 로맨스 스토리다. 여기서 필립은 폴라에게 “당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서 여인을 브람스 교향곡 제3번 연주회에 초청하며 사랑의 제스처를 보낸다.
제1번과 제2번에 이어 지난달 29일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의 ‘브람스 언바운드’ 시리즈로 연주된 제3번 교향곡을 들었다. 장엄성과 여성적 아름다움이 잘 조화된 연주였는데 제3악장이 애절한 호소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제4번은 브람스의 더블 콘체르토와 함께 3일(오전 11시), 4일(오후 8시), 5일(오후 2시)에 연주된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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