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로 ‘사랑받는’이라는 의미의 ‘베나(vena)’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도품종은 1만 여종에 이르며 그중 300여종이 와인을 만드는 사용된다고 한다. 야생 포도나무는 약 2백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했지만 인류가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1만 년 전인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 상태에서 발효된 포도주였고, 인류가 직접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약 7천 년 전 흑해연안의 그루지아(Georgia)에서이다.
예로부터 와인은 ‘약인 동시에 독’으로 간주되었다. 기원전 5세기경 히포크라테스는 와인이 원기회복에 탁월하며 살균과 이뇨작용에 효능이 있다고 언급했고 그 후 와인은 환자들에게 치료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마시라. 이것은 나의 피이니라’라고 말한 것처럼 18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와인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피가 된다고 믿었다.
소크라테스는 와인을 ‘꺼져가는 불꽃에 기름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고 플라톤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극찬했다. 프랑스인들은 와인이 없는 식사를 ‘태양이 없는 하루’로 비유하며 레드와인을 아예 ‘노인의 우유’라고 부르기도 한다.
와인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디오니소스(Dionysos)이다. 1872년 니체는 그리스 비극의 근원을 논한 자신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적 충동의 유형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나누었다. 태양의 신인 아폴론이 절제, 이성, 균형 그리고 조화와 질서를 상징한다면 와인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도취, 무질서, 본능, 광란 등을 상징하고 있다.
아폴론은 올림포스(Olympus) 신전의 12주신(主神) 중 하나로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이었다. 반면 디오니소스는 처음에는 12주신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불과 화덕의 여신 헤스티아가 빠지면서 그 반열에 올랐다. 어쨌든 그리스 신화의 최고의 신인 제우스와 테베의 공주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의 신 가운데 유일하게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신이다.
제우스의 본 부인인 헤라는 제우스와 세멜레의 관계를 알게 된 후 질투심에 불타 계략을 꾸민다. 어느 날 헤라는 세멜레를 키웠던 늙은 유모로 변신해 세멜레를 찾아가 제우스가 가짜일 수 있으니 제우스가 천상에 있을 때의 신 본연의 모습을 꼭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헤라의 간계에 넘어간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청했고 제우스도 선뜻 응했다. 하지만 인간인 세멜레는 제우스가 신의 모습을 드러내자 엄청난 광휘 때문에 순식간에 새카맣게 타 죽고 만다. 하지만 세멜레의 몸속에는 작은 생명이 잉태되고 있었다. 제우스는 세멜레의 자궁에서 아기를 끄집어내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고 금실로 꿰맸고 그 후 달수가 찬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그가 바로 디오니소스였다. 제우스는 헤라 몰래 디오니소스를 니사라는 곳으로 보내 님프(요정)의 손에 자라게 했다. 니사에서 성장하는 동안 그는 포도를 발견하고 술을 빚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뒤 늦게 디오니소스의 존재를 알게 된 헤라는 디오니소스에게 광기를 불어넣어 세상을 떠돌게 하였다. 여신 레아는 디오니소스가 프리기아에 도착했을 때 그의 광기를 치료해 주었지만 이후에도 디오니소스는 이집트와 시리아 등 아시아 전역을 방랑하면서 가는 곳마다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빚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태생부터 신과 인간의 양면성 때문에 디오니소스는 와인을 통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운명을 떠맡게 되었다. 디오니소스처럼 와인 또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비록 와인이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지만 취기가 만들어내는 광기 때문에 자제력을 잃고 짐승처럼 난폭해지기도 한다.
와인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디오니소스 신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디오니소스는 나뭇가지 하나를 발견하고는 이를 주워 새의 뼛속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를 다시 사자의 뼛속에 옮겨놓았다가 마지막으로 당나귀의 뼛속에 감추었다고 한다. 그 후 이 나뭇가지는 닉소스(Naxos: 그리스의 섬)에 심어져 최초의 포도나무로 자라났고 그 열매로 와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와인을 마시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새처럼 재잘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자처럼 난폭해지며 마지막으로 당나귀처럼 우매해진다고 한다. 새는 그렇다 치고라도 사자나 당나귀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술을 마실 때는 절제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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