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무의 술’ 보드카(vodka)는 색과 향과 맛이 없는 무색 무취 무미의 술이다. 스코틀랜드의 스카치위스키나 독일의 맥주 그리고 프랑스 와인처럼 보드카 하면 러시아가 떠오른다. 오늘날 우리나라 음주문화에서 일상화된 폭탄주(Bomb Shot)의 유래도 보드카와 연관이 있는데 제정 러시아 시대 시베리아 벌목공들이 혹한을 이기기 위해 보드카를 맥주와 섞어 마신 것이 폭탄주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술을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은 보드카 잔을 들 때마다 ‘원샷(bottoms up)!’을 할뿐만 아니라 대개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신다. 우리나라에서는 건배할 때 대개 “위하여!”라고 말하지만 러시아인들은 “쭉 들이켜라, 불행을 남기면 안돼!”라고 말한다. 러시아인의 보드카 사랑은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1994년에 국가원수 자격으로 아일랜드를 방문하지만 술에 만취해 그만 정상회담을 펑크 내고 마는데 이는 세계 외교사에서 전례가 없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러시아의 보드카 도수는 보통 40도이다. 물론 이보다 더 약한 것도 있고 밀주의 경우 50-60도의 아주 독한 것도 있다. 하지만 보드카의 도수를 현재의 40도로 정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원소주기율표를 확립한 19세기 러시아 화학자 멘델레프(Dmitrii I. Mendeleev)이다. 당시 보드카의 도수는 일정치 않았지만 1865년 그는 자신의 박사논문 “알코올과 물의 합성에 관하여”에서 40도의 보드카가 가장 이상적임을 밝혀냈다. 즉 물과 알코올 원액의 혼합 비율에 따라 보드카의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끊임없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결국 사람의 몸에 잘 흡수되면서 최고의 술 맛을 내는 40도 보드카를 만들었다.
러시아 보드카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수도(capital)을 의미하는 스톨리치나야(Stolichnaya)와 러시아 최고급 보드카 벨루가(Beluga) 등이 유명하다. 물론 러시아에서만 보드카가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폴란드 발트 3국과 같은 동유럽 국가들 그리고 몽골 미국 등에서도 생산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드카로는 스웨덴의 압솔루트(Absolut), 핀란드의 핀란디아(Finlandia) 폴란드의 쇼팽과 주브롭카(Zubrowka) 그리고 미국의 스미노프(Smirnoff) 등이 있다.
세계 2위의 보드카 브랜드인 앱솔루트는 병 모양이 독특한데 흔히 병원에서 볼 수 있는 ‘링거병’을 닮았고 또 핀란디아는 병속의 맑고 투명한 액체를 보이게 하여 차고 순수한 보드카의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폴란드에서는 쇼팽의 이름을 붙인 보드카도 유명하지만 대개는 주브롭카를 즐겨 마신다. 이 보드카에는 ‘주브르’라고 하는 유럽의 들소 즉 유러피언 버팔로 사진이 붙어있으며 병 속에는 들소가 좋아하는 풀잎 즉 버팔로 그래스(buffalo grass)가 들어 있어 약간 초록색을 띤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 제1의 보드카 생산국이 러시아나 폴란드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현재 6대륙 15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세계 제1의 보드카 브랜드인 ‘스미노프’ 역시 미국회사이다. 스미노프는 원래 표트르 스미르노프(Piotr Smirnov)라는 러시아인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생산한 것으로 1886년 알렉산드르 3세 때 황실에 납품된 러시아 최고의 보드카였다. 하지만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생산될 때에는 러시아식 이름인 ‘Smirnov’가 프랑스식인 ‘Smirnoff’로 바뀌었고 또 1938년에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회사에 넘어갔다.
요즘 보드카의 본고장인 러시아에서도 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맥주소비량은 독일을 제치고 현재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이다. 이에 반해 러시아에서 보드카의 시장 점유율은 90년대 80% 이상이던 것이 현재는 4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러시아인들이 맥주를 선호하게 된 이유는 90년대 사망에까지 이를 수도 있는 가짜 보드카가 시장에 대량 유통된 것도 원인중 하나지만 이 분야 전문가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신흥시장의 경우 독주보다 맥주의 소비가 증가한다고 한다. 즉 빈곤국에서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주류를 많이 찾지만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상대적으로 순한 맥주를 선호한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독주를 마시며 혹한을 이겨내는 강인한 이미지의 러시아인들도 국가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차츰 건강 쪽으로 많이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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