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밭에 굴러도 이세상이 좋다고 했는데, 왜 내 주변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저세상으로 떠나가는지 모르겠다. 그 곳에는 정든 피붙이 가족이나, 마음 속 깊은 속내를 탁 터놓고 이바구(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없는데 말이다.
지난 2월에는 이 미국 땅에서 만난 나의 유일한 고향 친구인 동갑내기 김동기 목사가 봄비 속에 떠나가더니, 저 지난 달에는 47년 전에 내가 공연 차 들렸던, 일본 동북부 지방 샌다이와 이시노 마끼의 많은 동포들이 지진과 해일로 사라져가기도 했다. 그래서 그 때 샌다이 역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 극단 단원들을 마중해 주고, 또 떠나보내주던 그 동포 어린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아직까지 내 눈에 아른거리고 있는데, 지난달에는 내 수필 원고를 다년간에 걸쳐 신문사에 전송(電送)해 주었을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의 나의 연극 활동을 격려해 주시던 최영학 목사 또한, 한참 사역(使役)할 나이인 70세에 내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내 동생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의 좋은 글로 이 지역에 많은 애독자를 지니고 있는 문우(文友) J형이, 봄이 옴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봄이 오는 길목을 막아서듯, 그의 활동을 시샘이나 하듯이 그를 모진 병고(病苦)에 몰아넣음으로 해서, 병에 대한 면역성(免疫性)이 떨어져 기름이 바닥난 등불처럼 깜박이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그들과 내가 서로 의지하며 또 격려하며 살아 온, 이민의 세월이 그래서 더욱 외롭게 느껴진다.
봄이 봄 같지 않았던 3,4월을 보내기는 했지만,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이 시간이자 세월이라고 했듯, 이 해도 벌써 5월!
나는 오랜만에 따사한 5월의 햇살을 쪼여 보려고, 해 가리게 모자를 쓰고 뒤뜰에 나가 앉는다. 흰나비 한 마리가 할멈이 가꿔 놓은 꽃에 내려 앉아있다. 내 어릴 적 봄 들판에 잔잔한 파도 물결 같이 깔려 흐르는 아지랑이 노을을 타고, 서핑(Shurping)하듯이 봄 동산을 가로질러 날아가던, 그 옛적의 나비의 춤을 봄풀 같은 동심(童心)으로 바라보던, 그 옛적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5월 어린이날을 맞아, 다양한 어린이 행사가 펼쳐지고 있는 그 땅의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그 곳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더라면, 이 어린이 주간에 국립극장 무대에 내 작품을 공연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슴에 차고 든다. 그리고 나는 내가 즐겨 보는 야구경기, 그것도 요즘 한창인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경기(MLB)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는다. 그래도 지난날에는 내 분야(分野)의 구장(野球場)에서 제법 홈런도 날리고, 꽤 많은 안타를 쳤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기록들은 모래사장의 발자국같이 씻겨 지워지고, 이제는 범타(凡打)를 치고 맥없이 덕아웃(Dug-Out) 벤치에 고개 떨구고 앉아 있는 야구선수 같은 내 모습을 바라본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언제나 고향 쪽을 바라보는 내 습성처럼, 오늘도 나는 고향 친구에게 전화 다이알을 돌린다. 힘없이 내 귓전에 전해 오는 친구 석인이의 목소리! “평이야, 또 한 사람 갔다!” 였다. 삼천포(三千浦)에 사는 중학동기인 ‘손진기’군의 죽음을 알리는 전갈인 것이다. 진기의 타계(他界)로 40명 중학교 동기생 중 5명밖에 남지 않은 친구 중에서, 그 누가 먼저 먼 길 떠날 차표를 끊을 것인가 하는 방정 맞는 생각을 하면서, 내 마음의 일기장에다 우울한 5월의 사연을 끄적거려 보는 것이다.
내가 석인이와의 통화를 마치고 우두커니 소파에 기대앉아 있을 때, 딸애가 애비가 좋아 하는 생선 횟감을 사들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애비의 울적한 심정을 읽었는지, “아버지, 왜 그렇게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어요?” 라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는 말을 잇는다. “아버지, 우리 하나 아빠(부동산 하는 사위) 집 두어 채 팔거든, 같이 쿠루즈여행 가요!” 라고. 딸애의 말이 내 귀전에 울릴 때, 내 눈시울이 젖어 옴을 느낀다.
동생들에게는 언제나 깍듯한 누나로써 그리고 애비, 에미에게는 심청(沈淸)이 같은 보살핌으로 사는 딸애와 사위, 그리고 아들들이 가까이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 노부부(老夫婦)는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애비가 딸애에게 되돌려 보내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애비, 에미가 크루즈 여행을 안 가도 좋으니 하루 속히 부동산 경기가 풀려 너희들이나 잘 살아 주기 바란다!” 일 것이다.
딸애가 돌아 간 뒤, 나는 둥지를 박차고 날라 오르는 독수리 같이, 자동차의 핸들을 불끈 쥐어 잡고, 정처없이 뭉게구름이 깔린 5월의 거리를 달리면서, 문우 J형을 비롯하여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내 주변들의 쾌유(快癒)를 빌어 본다. 그리고 92세 나이에 베스트셀러 시인이 된, 일본의 99세 ‘시바다 도요’ 할머니의 시(詩), ‘약해지지 마’ 를 마음속으로 읊어 보는 것이다.
/있잖아, 불행하다고/한숨짓지 마/햇살과 산들바람은/한쪽 편만 들지 않아/꿈은/평등하게 꿀 수 있는거야/나도 괴로운 일/많지만/살아 있어 좋았어/너도 약해지지 마/
(아동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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