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운영 웨스트할리웃의 명소 ‘어브스 버거’
간편하고 맛있는 음식 햄버거.
맥도널드와 함께 미국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한국에서 자란 우리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되어있다. 겉은 노릇하게 구워지고 속은 부드러운 빵, 얇은 쇠고기 패티, 노란 아메리칸 치즈와 피클의 냄새, 다져진 양파와 마요네즈에 머스터드까지, 햄버거 속 재료 하나하나는 우리에게 새롭고 쿨한 ‘미국의 맛’, 그야말로 햄버거에 미국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민자들에게도 마찬가지. 70년대 한국에서는 먹어보기 힘든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스에 피자와 콜라 등을 언제든지 싼 값에 사 먹을 수 있고 맛있게 배를 불릴 수 있으니 특별한 향수가 서린 음식이기도 하다.
40년 단골 수두룩… 루트 66선상 ‘히스토릭 빌딩’ 지정
햄버거는 세계 곳곳에 친근하고 맛있는 미국으로 다가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재미있고 신나는 미국의 이미지를 심어주었지만, 점차 대표 패스트푸드의 오명을 쓰고 전에 없던 외면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햄버거를 버리지 못한다. 아니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은 진화되었거나 전통을 고수하거나 그 스타일대로 햄버거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고급 식당에서도 독특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낸 햄버거가 메뉴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으며, 패스트푸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보다 건강하고 다양하게 만들어 내는 여러 햄버거 샵들도 많이 등장했다. 빵부터 모든 재료를 직접 골라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크게 인기몰이를 한 커스텀 빌트 버거 ‘더 카운터’(The Counter)를 비롯해 독특한 인테리어와 고메 버거로 대박행진을 만들고 있는 ‘우마미’(Umami) 등 여러 곳이 성업 중이다.
그런 한편 최신 유행이나 잠깐의 인기몰이가 아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40년 된 단골들의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는 햄버거집이 있다. 한인 소니아 홍(Sonia Hong)씨가 가족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웨스트할리웃의 ‘어브스 버거’(Irv’s burgers)가 바로 그 곳.
1950년대 오픈한 이 햄버거 스탠드는 지금도 그때의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놀랍다. 허름한 외관의 햄버거 스탠드와 안쪽으로 있는 작은 주방, 테이블 6〜7개가 놓인 패티오가 전부. 그런데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 작은 햄버거 가게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입이 딱 벌어질 감동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1950년도 퀸즈 버거라는 이름으로 오픈 한 이곳은 수없이 많은 배우, 극작가, 가수 등의 단골손님들이 매일 식사를 하러 들르는 동네 최고의 햄버거 가게로 유명했다. 60〜70년대를 풍미했던 여가수 린다 론스타트의 가장 많이 팔린 ‘리빙 인 유에스 에이’ 앨범 재킷의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으며, 이름이 어브스 버거로 바뀐 후에도 오랫동안 그 명성을 유지해왔다.
홍씨 가족이 어브스를 인수한 것은 2000년 1월. 그런데 리스가 끝나가던 2004년 재개발을 목적으로 ‘피츠 커피샵’이 들어서기 위해 철거될 위기를 맞이했고 홍씨 가족과 단골손님들은 힘을 합쳐 ‘계란으로 바위치기’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이미 주민들의 마음속에 안식처로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이 위기를 통하여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힘을 만들어냈다.
어브스의
치즈버거(위)와 가게 앞에서 미국 100대 햄버거를 수록한 ‘햄버거 아메리카’를 들고 있는 소니아 홍씨.
맛은 기본·정 듬뿍 ‘40년 터줏대감’
“대기업이 돈의 힘으로 밀고 들어와 이 자리를 차지하다는 것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어요.” 단골손님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돈 제임스가 말했다. 제임스와 가족같은 단골손님들은 홍씨 가족을 도와 이곳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웠다. 손님들과 함께 많은 공청회에 참석해 의견을 전달하고, 1년이 넘도록 시청과 커피회사에 편지를 거의 매일 보냈다. 10세 된 꼬마 손님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고, 덕분에 LA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의 뉴스에도 나와 인터뷰도 많이 했다.
드디어 지역 주민들의 추억과 애환이 서린 어브스를 지키기 위한 이들의 끈질긴 노력은 커피회사 임원들의 마음을 바꾸었고, 주민들의 마음이 이러한데 이곳을 차지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을 받아내며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소니아 홍씨와 고객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고, 시당국이 어브스를 지역의 역사를 간직한 명소인 히스토릭 빌딩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하여 이것 역시 받아들여지는 쾌거를 이뤘다. LA와 시카고를 잇는 마더 로드로 불리는 루트 66선상에 위치한 어브스는 이제 그 명성과 역사를 쭈욱 이어갈 계획이다.
그러면 이 어브스는 다른 햄버거 스탠드와 무엇이 다르기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일단 리뷰 사이트 Yelp.com에서 확인해 보니 누구나 감동하는 환상적인 서비스가 바로 그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소니아 홍씨를 비롯한 그 가족의 친절함 때문인데, 과연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사람들이 이토록 감동하는 것일까 정말 궁금했었다.
직접 소니아 홍씨를 만나보고 파악한 그 서비스 정신은 다름 아닌 우리네 ‘정’이었다. 인정이 넘치는 한국인 특유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안부를 물으며(주로 가족들까지 다 아는 단골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길어진다. 옆에서 들으니 가족은 물론 친구와 사촌까지 그 범위가 넓어지기도 한다), 매일 아침이나 점심에 들르는 손님은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홍씨가 이미 그들의 메뉴를 알고 있었다.
또 햄버거가 서브되는 종이 접시에는 홍씨가 직접 인사 문구를 써넣고 웃는 얼굴 모양이나, 그날 손님이 입은 멋진 셔츠 등을 그림으로 그려준다. 이 부분에서 손님들은 아이처럼 좋아하며 VIP가 된 듯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패티오의 차갑고 딱딱한 플래스틱 의자 위에 깔린 얇은 방석들이 하나하나 다리에 묶여 있어 이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손님들을 대하고, 또 그것을 고맙게 여기는 단골손님들이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끈끈한 정을 이어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미국적인 음식을 한국사람이 만들고 있지만 음식에는 인종을 넘어선 정이 담겨야 제 맛을 내는가 보다. 같은 햄버거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만들어 손에 쥐어주면 누구에게라도 소울 푸드가 되는 것이다.
독특하고 새로운 방법의 서비스 정신도 좋겠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마음에서 우러난 “맛있게 드세요” 한 마디가 먹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식당 오너들은 모두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히스토릭 빌딩으로 지정된 어브스 버거.
손님에게
인사말을 써주는 이곳의 트레이드마크 서비스. 블루 셔츠를 입은 손님에게 주는 특별한 서비스.
어브스 버거의 그간 역사를 보여주는 많은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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