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1주년을 맞는 그 장엄한 5.18 광주 민주항쟁. 그것은 폭압과 횡포의 지배 권력을 청산하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새 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일척건곤(一擲乾坤)의 장엄한 성전이었다.
저 포악한 총칼의 무한폭력에 맨 가슴으로 맞선 1980년 5월의 시민혁명에서 치켜 든 민주의 횃불, 그것은 분단, 6.25의 동족상잔, 5.16 군사 쿠데타 등 격동의 현대사가 양산한 모든 모순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였다.
광주 5월 민주항쟁은 오늘 우리의 조국이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모든 국민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의료와 건보 혜택을 받는 복지국가로 일어서는 민중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우리의 조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등 모든 면에서 87년 이전의 구체제(Ancient Regime)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진보의 가치를 확립했다.
그리고 지금 잠시 중단되긴 했으나 남북의 정상이 6.15 ‘평양선언’을 통해 통일의지의 출사표를 던진 장엄한 행진, 그리고 이 통일 마그나 카르타의 첫 페이지에서 반세기 이상 끊긴 경의선의 녹슨 철길 위에 철마를 띄우고 개성공단을 건설하는 등 민족 대단결의 확인은 분단의 긴장을 어부지리로 민중을 탄압하던 군사 독재정권을 퇴장시키고 민주주의 시대를 활짝 연 ‘빛고을’의 시민혁명이 쟁취한 전리품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큰 변혁을 가져온 조국의 민주주의와 민족 대단결의 큰 발걸음이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는 게 오늘의 실정이다. 군사독재의 퇴장과 함께 과거에 사장(死藏)되었어야 할 파쇼세력이 고국의 정치지평에 재등장한 것은 역사의 역주행이다.
제3공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서울의 봄’을 짓밟고 신군부가 동원한 군인들이 그들이 지켜야 할 시민들의 두개골을 부수고, 심지어는 임신부의 복부에, 여린 누이들의 젖가슴에 칼을 꽂던 만행! 아, 특정 지역의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비참한 수모를 당해야 했던 그 맨 살의 가슴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광주시민 전체가, 남녀 학생과 청년들은 물론, 아이를 등에 업은 젊은 주부들,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모든 광주 시민들이,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새 역사를 꿈꾸며, 예수처럼 십자가를 지는 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은 장엄한 모습이었다.
정치적 부조리와 역사의 왜곡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진실의 눈빛을 가진 태양의 계절 5월이 오면, 우리는 망월동에 고이 잠들고 있는 그 날의 영웅들을 추모한다. 그들은 불의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 그리고 정의를 일으켜 세운 자만이 영원히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광주가 내외의 집요한 방해공작을 물리치고 전진하는 통일 대장정을 선도하는 횃불이 되기를 소망한다.
저 광란의 군사 독재시대, 그것은 우리가 버둥거리며 힘겹게 살아온 과거이면서도 그러나 아직도 진행 중인 현재이기도 하다.
오늘도 쿠데타 세력에 영합한 하수인들이 쳐 놓은 군사문화의 그물에 갇혀 진리 빛을 가리고 어두운 과거에 안주하려는 퇴행성 지식인들이 활보하고 있다. 오늘도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지역 차별에서 자기 기만적 희열을 찾는 과거지향적 정신 이상자들은 과거에 인질당하지 않고 광활한 미래에 남북의 민족이 함께 비상하는 희망공유의 꿈, 진보적 가치를 말할 때, 그 꿈을 좌파, 친북, 종북이라는 표현으로 폄하하는 병든 장미의 추한 야만을 본다.
광주는 이제 민주항쟁이라는 대명사를 넘어 한반도를 포함한 제3세계의 민중들에게 변혁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5.18민주항쟁은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저항으로 출발, 자치 공동체의 형성 및 정의를 위한 자기 희생과 반인륜적 학살에 저항하는 세계적인 인권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한니발의 후예들이 중동과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치열한 민주화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2011년의 봄은 바로 ‘빛고을’이 뿌린 한류(韓流)의 거울이다.
5.18의 위대성은 학살의 주범까지도 용서하고 새로운 가치, 동서화해와 화합의 장엄한 지평을 열어제낀 데 있다. 5.18항쟁의 희생자들이 쌓은 제단이 민족애였기 때문이다. 또 이 민족애는 전쟁 일보 전까지 치닫고 있은 남북관계의 퍼즐을 풀 수 있는 코드이기도 하다. 기간이 짧았지만 광주민주항쟁은 5천년 민족사 최초의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민중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정치적 실험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진정한 민주주의가 민중의 가슴에서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화합의 감동을 체험하는 기회를 주었다.
도전 없이는 승리도 없다. 우리 7천만 동포가 예속에서 자주를 쟁취하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성취하려면, 조국의 민중들이 1980년 5월 빛고을의 거리마다 터져 나온 그 함성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한반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분단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할 것이다. 전쟁을 평화로, 분쟁을 화해로, 대립을 협력으로, 그리고 분단을 통일로 이끌어 우리 민족이 2차 대전 이후 미제로 남은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구축할 때 5.18 민주항쟁은 드디어 세계사적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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