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much as we need a prosperous economy,
we also need a prosperity of kindness and decency.
경제의 번영이 필요한 만큼
친절과 품위의 번영 또한 필요한 법이다.
He is quite decent. 히이즈 콰잇트 디~쓴트.
저 사람 꽤 괜찮은 분입니다. 저 분 꽤 품위가 있는
사람이지요. 그렇게 쓰이는 영어 단어 ‘decent’는 미상불
품위 있는 형용사입니다. He is a decent man. 꽤 괜찮은
사람을 가리켜 ‘a decent man’이라 하지요. 흔히 쓰는
말이지만, 이 말을 들으려면 상당히 좋은 자질을 두루
갖추어야 한답니다.
현재 미국 대통령 Barak Obama, 꽤 ‘디~쓴트’한 사람같이
보입니다. 전 대통령 부시(Bush) 부자는 오바마에 비해
그리 ‘decent’해 보이지 않습니다. 지도자로서의 판단이나
소통능력에 탁월했던 클린턴 같은 분도 크게 ‘decent’한
사람으로 여기기엔 좀 어렵지요. 과연 어떤 사람이
’decent’하고 어떤 사람이 ‘indecent’ [인디~쓴트]한 걸까?
쉬워 보이지만 까다로운 상식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 번영만큼 친절과 품위의 번영도 필수라 말하는
캐롤라인 케네디 (Caroline Kennedy), 바로 존 에프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 그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사이의 따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분이기에 당연히 ‘decency’를 논할 수 있는 분이기도
하겠지요.
As much as we need a prosperous economy,
we also need a prosperity of kindness and decency.
경제의 번영이 필요한 만큼
친절과 품위의 번영 또한 필요한 법이다.
형용사 ‘decent’ [품위 있는]의 명사형 ‘decency’ [디~쓴시]를
우리말로 적확(的確) 하게 옮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터넷
영어사전을 검색해 봅니다. 1. 남부끄럽잖음; 체면; 체면을
유지함. 2. (언행이) 예의 바름, 예절에 맞음, 품위 있음.
3. (the -cies) 예의범절, 예절; 남부끄럽잖은 생활[행위]에
필요한 것. [야후 영어사전]
그런 ‘디~쓴시’의 번영이 경제적 번영 못지않게 절실한 게
요즘 우리 세상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날 내 조국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가운데 진정 ‘decent’한 인물을 꼽으라면 과연 누가
떠오를까요? 아마도 잘 알려진 정치인 가운데서 고르라면 더
어려운 과제가 되겠지요. 이른바 차기 대권주자라는 분들을
잠시 떠 올려 보세요. 이 분들 중 ‘꽤 괜찮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내 조국 대한민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조명해 봅니다.
서로 경쟁하듯 성형이 남 부끄럽지 않은 사회. 탈 뒤의
정체를 애써 숨기더라도 어떻게든 예쁜 탈을 세상에
내 보이려는 사회. 꼭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성공이란
신기루에 가까이 다가가는 제로섬[Zero-Sum]게임이 팽배한
사회. 서민의 기특한 삶을 능멸하듯 명품으로 치장해 잔뜩
뻐기는 걸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촌스런 부자들이
득실거리는 사회. 아마도 이런 구석에서 ‘decency’를 찾는
건 부자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워
보입니다.
As much as we need a prosperous economy,
we also need a prosperity of kindness and decency.
경제의 번영이 필요한 만큼
친절과 품위의 번영 또한 필요한 법이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 나라에도 국격(國格)이란 게
있습니다. 내 조국 대한민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총체적 인격,
대한민국의 국격은 과연 얼마나 ‘decent’한 수준일까요? 소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고 여기는 나라, 그 나라 사람들의
모두 합친 인격은 과연 어떤 수준의 ‘decency’가 될까요?
’디~쓴시’의 뿌리는 실존적 부끄러움입니다.
그 누구도 비껴 갈 수 없는 양심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게
’decency’의 정직한 모습입니다. 잠시 세상을 향한 거짓이
통한다 해도 언젠가 결국 그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게
바로 ‘decency’요 또한 그 결핍인 ‘indecency’인 것입니다.
어느 사회든 11% 정도의 순수한 영혼들이 산다고 합니다.
백 사람 중 열 한 명 정도의 ‘디~쓴트’한 소울들[souls]이
존재한다는 거죠. 이 분들이 ‘decency’를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decent’하게 살기에 그나마 그 사회가 유지됩니다.
Kudos to the decent in the world!
미국 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Rita Mae Brown)이 말합니다.
“Morals are private. Decency is public.”
도덕은 사적인 문제다. ‘디~쓴시’는 공적인 문제다.
안의 양심이 밖의 판단에 맡겨지면 ‘디~쓴시’의 정도가
확실히 보인다는 얘깁니다.
대한민국 사람인 나, 스스로 물어 봅니다.
How decent am I?
How decent are we as a nation?
OM~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 /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
English for the Soul 지난 글들은 우리말 야후 블로그
http://kr.blog.yahoo.com/jh3choi [영어서원 백운재],
EFTS 폴더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