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와 더불어 구석기시대 회화예술의 정수로 간주되는 스페인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벽화에는 황소 등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알타미라 벽화는 스페인 예술사의 시작으로 간주됨은 물론 인류학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이처럼 황소는 스페인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세계 최초의 투우사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를 퇴치한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였다. 또 그와 동시대의 헤라클레스는 그리스의 황소신화를 처음으로 스페인에 전파한 인물로 기록되어있다. 따라서 투우의 기원은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의 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말까지 스페인의 투우는 전적으로 귀족들 사이에서만 성행했다. 하지만 18세기로 접어들면서 오늘날 진행되는 투우경기의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고 또한 일반 대중들도 참관할 수 있게 됨으로써 차츰 스페인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개 석양의 붉은 노을이 물들 때 시작되는 투우경기는 3팀으로 이루어진 투우사들이 1팀당 2마리, 즉 총 6마리의 소를 상대한다. 그리고 경기 진행시간은 1마리당 약 20-30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총 2시간 30분 내외에서 결정된다.
투우경기의 시작은 투우사를 소개하는 장내 행진으로부터 시작된다. 행진이 끝나면 무게가 500kg가 넘는 황소가 투우장 내에 투입되는데 한눈에 봐도 힘이 넘친다. 투우경기는 역할이 서로 다른 세 부류의 투우사들이 투우장에 등장하는 시기에 따라 3단계로 구분되는데, 그것은 장창꽂이(Suerte de Varas), 단창꽂이(Banderillas) 그리고 진실의 순간(La hora de la verdad)이다.
경기의 진행을 보면, 우선 2명의 투우사가 말을 타고 등장하는데 그들 중 1명은 긴 창으로 소의 등을 찔러 피가 흐르게 한다. 두 번째 단계에는 또 다른 3명의 투우사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소의 공격을 피하면서 각각 2개의 짧은 창, 즉 총 6개의 단창을 차례로 등에 꽂아 소를 흥분시킨다. 피를 흘리는 황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보다 힘이 많이 빠지게 되는데, 이윽고 마지막 단계에서 스페인어로 마타도르(matador: 죽이는 사람)라고 하는 주연투우사가 나와 물레타(muleta)라는 붉은 천을 사용하여 황소와 정면대결을 한다.
최고의 투우사일수록 소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 칼로 급소를 단번에 관통시켜야 하는데, 이는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은 고난도의 기술이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전 마타도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황소와 잠시 시선을 교환하는데, 이때는 관중들도 모두 숨을 죽인다. 그 순간 투우장 내 분위기는 말 그대로 석양의 붉은 노을 아래 투우사와 황소의 비장한 침묵만이 흐를 뿐이다. 마침내 투우사가 황소를 제압하면, 모든 결과는 객석 상단에 있는 판정관들에 의해 결정되며 훌륭한 투우사는 판정 결과에 따라 소의 귀를 하나나 둘 혹은 양쪽 귀 그리고 꼬리까지 잘라 갈 수 있다. 그리고 죽은 소는 노새가 투우장 밖으로 끌고 나간다.
대개 사람들은 투우경기에서 투우사와 황소의 승부에만 관심이 많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투우가 강렬한 에로티시즘의 표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중세기풍의 금·은으로 장식된 투우사의 화려한 의상과 절제되면서도 도발적인 성적인 포즈는 관중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하반신을 꽉 죄는 바지는 남성의 심벌과 원래 그대로의 히프(hip) 모양을 강조하고 있으며, 반복된 숙련으로 완성된 투우사의 절제된 몸짓은 삶과 죽음 사이의 핏빛 향연 속에서 힘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주며 관중을 흥분시킨다.
대개는 물레타의 붉은 색이 소를 흥분시킨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투우장의 관중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것이다. 소는 색맹이기 때문에 붉은 색에 동요하는 것이 아니라 천의 흔들림에 자극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투우장에 한번 들어간 소는 절대로 죽기 전에는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없지만 예외도 있는데, 그것은 투우사와 전혀 싸울 의사가 없는 황소의 경우이다. 또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싸울 의사가 없는 것은 물론 투우장 밖으로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완전히 개념 없는 소도 간혹 있다고 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뿔에 방울을 달은 예쁜 암소를 데리고 들어와 그 소를 투우장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고 한다.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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