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선호하는 한국 풍토에서는 아들을 바란 나머지 온갖 의학적 방법에다 산신령에게 비는 일까지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실망에 차면, 다른 여성에게서 대리 임신을 기대하거나, 아예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리는 경우까지 있다. 이러한 풍토에서 아들로 태어났으니 부모의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래서 결혼 후에도 아들을 낳는다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에는 야구의 핏쳐가 ‘스트라이크’를 던진 기분이었다. 둘째도 아들이려니 했었지만 딸이라 그냥 ‘볼’을 던진 느낌이었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점차 딸의 재롱이 더 귀여워졌다. 차에서 내리면 꼭 아빠의 손을 잡는 딸이 귀엽게 느껴지는 건 웬일인지. 가정의 달에 딸을 생각해본다.
행복은 다 남이 가진 것 같다. 자녀가 없는 사람은 자녀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딸만 있는 집안은 아들 있는 집안을 부러워하고… 자신이 가진 행복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끼질 못한다. 어느 아들 셋 가진 가정을 보면, 무슨 군대 같다. 아버지의 고함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여성다움이 없다. 또 다른 아들 셋을 둔 가정을 보면, 아들들의 이름이 ‘대한’ ‘민국’ 그리고 ‘만세’다. 애국자 집안인가 보다. 넷째 아들이 태어난다면, 그 이름이 ‘독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아들딸을 무슨 병아리 고르듯 해서야 될까? 집안에 아들 하나 딸 하나 태어났으니 그저 남의 집안 부러워할 일이 없어 감사하다. 그래서 아내의 발언권이 세어졌나보다.
딸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소속 교회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데이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딸들은 미리 교회에 도착해서 자기 아빠에게 드릴 카드도 만들고 편지도 쓰고 데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 후 도착한 아빠들과 저녁 식사부터 같이 했다. 편지를 읽으면서 딸의 생각도 좀 알 수 있어 눈시울이 뜨겁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게임도 함께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지금은 훌쩍 커버린 딸과 그때 보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중고교 시절 때엔 사춘기에 들어선 딸을 한번 안아보기가 힘들었다.
두 자녀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공부도 뒤떨어지지 않고, 그리 부모 힘들지 않게 십대를 보냈으니 이 또한 감사하다. 딸의 공로는 지대하다. 미국, 일본 및 한국의 국제사진 오픈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모두 딸이 고른 것이었다. 취향이 비슷해서 꼭 사진을 가르치고 싶었다. 아내도 딸이 사진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무관심이었다. 그 사이에 아들은 부전자전인지, 엔지니어에다 여러 호텔 예식장에서 우선 지정 결혼사진 작가가 (Preferred Photographer) 되어 아버지 사진 장비보다도 더 비싼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때, 딸이 카메라를 선물해달라고 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카메라와 렌즈를 선물로 사줬는데도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에 손도 댄 것 같지 않았다. 한 가지 놀란 것은 색깔을 정확히 분별할 줄 아는 소질이었다. 사진 속의 얼굴색이 조금만 틀려도 쉽게 가려낼 정도니 확실한 소질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계절이 가고 다시와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지난 어느 겨울날, 갑자기 함께 사진을 찍으러 가잔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었다. 차로 두 시간 거리의 목적지를 정하고 함께 갔다. 딸과 둘만의 시간이었다. 그 옛날 교회에서 데이트하던 시절이 훌쩍 가버린 아쉬움도, 다시 딸과 데이트한다는 기쁨에 밀려나는 듯했다. 옆의 어린 딸이 이젠 여인으로 성장해있는 것이었다. 희끗해가는 머리털이 다 이유가 있는 듯했다. 차안에서 옛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에 관해 필수적인 요소들을 이야기해줬다. 카메라 조작법을 안다고 사진을 잘한다며 자칭 사진작가라지만 그렇지 않다. 사진은 시각적인 소통이기 때문에 구도가 생명이다. 주어진 프레임 속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노출은 부수적인 것이다. 구도에 관한 한, 딸이 더 잘 알고 있으므로 연습만 하면 된다. 사실은 사진보다도 딸과의 데이트가 더 큰 관심사였다.
데이트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딸이 다시 가자고 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들이 여동생을 결혼사진 찍는데 조수로 데려가겠단다. 그래서 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렌즈들도 다 챙겨줬다. 자식에게, 특히 딸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게 생각되는 것이 부성애인가? 항상 관심을 갖는 일은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는 일이다. 아들이 결혼 후에도 동생을 아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노신사가 또 한 번 감사하는 일이라 느낀다. 아침에 눈뜨면 머리맡의 사진 속에서 어린 시절의 딸이 웃고 있다. “Forever daddy’s little girl”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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