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 난 후 집 없는 주민들을 위해 여러 명의 자원 봉사자들과 같이 헌 집을 고치거나 비교적 간단한 새 집을 지어주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작업복을 입고 해머로 못을 치면서 봉사활동을 하던 그의 모습은 참으로 존경스러워 보였다. 그는 대통령직에 있을 때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인권을 강조했기 때문에 ‘인권대통령’이란 칭호를 들을 만 했었다. 대통령 재임 시 한국에 방문 했을 때도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김영삼 의원을 포함 반대 정치인들의 주장과 또 그들의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대통령직을 끝마친 다음 카터가 중국에 가서 어떤 용무를 마치고 베이징 공항에서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노스웨스트 항공편을 타고 가던 중 중간 기착지인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그때 그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나리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경호원인 듯한 두 명의 젊은 미국인들과 일본 공항경찰 두 서너 명이 비행기 통로 문 앞에 나타났다. 처음엔 나는 어떤 범인을 외국에서 압송해 오기 때문에 보안상 그런 사람들이 나타난 모양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그 문을 통해 카터가 나오지 않는가! 직접 카터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조금 후 그 비행기에 탑승했다. 언제 카터가 비행기에 다시 탑승 했는지도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한 시간쯤 비행한 후 몇 명의 경호원들과 함께 카터가 일등석으로부터 이등석, 보통석 승객들 좌석 쪽으로 나오면서 일일이 승객과 악수를 청했다. 그 악수를 외면하는 승객도 몇몇 보였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그와 악수하면서 그에게 “인권의 대가 (Master of Human Right)입니다’”고 한 마디 건넸다. 그는 조용히 이 말을 듣기만 하고 아무런 대꾸 없이 금세 지나갔다.
요사이 카터가 전 핀란드 대통령, 전 아일랜드 대통령, 전 노르웨이 총리와 함께 디 엘더스 (The Elders) 그룹의 단장으로 베이징과 평양을 방문하고 연이어 서울도 방문했다. 카터는 1994년에 북한을 방문했고, 작년 북한 방문 때는 그 곳에 구금되어 있던 미국인도 직접 데려오기도 했다. 인권을 중요시 하는 카터는 이번 세 번째 평양 방문에서는 북한의 인권문제는 제쳐 놓고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 및 6자회담 재개를 실현시켜 보자는 것, 즉 카터 자신이 그것을 중재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카터가 북한의 초청을 받았다고 하지만 방문 전 한미 양국 정부와의 조율이 전혀 없었다는 점, 더군다나 인권 침해가 극심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발언 대신 한미 정부가 북한에 식량지원을 억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발언한 점은 그가 공평하게 양쪽의 중재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증명이 되었다. 중재자라면 양쪽의 신임을 받고 공평한 입장에서 다뤄야 될 것이다.
사실 남한은 김대중, 노무현 시절 북한에 달러와 쌀, 비료를 포함 많은 원조를 한 적이 있다. 북에 돌아간 것은 핵무기 제조였다. 북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는 일절 사과의 표명이 없다. 그리고 핵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남북회담, 6자회담 재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카터가 평양으로 가기 전 베이징에 들렸는데 거기서 ‘남한이 북한에 식량원조를 안 하니 도리어 중국이 더 많이 식량원조를 하라’고 당부했어야 될 것이다.
북한을 감싸고 있는 중국은 요새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 제스처를 쓰고 있다. 북의 실천적 비핵화 의지가 없는 한 6자회담은 ‘말 장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카터가 서울에 와서 들려주는 말 ‘김정일이 이명박을 만날 수 있다고,’ 사실 만나도 좋다. 그렇다면 북이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폭침과 포격에 대해 사과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한국의 민주당은 국회에서 북의 인권법 통과를 원하지 않고 있다. 4.27재보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은 지금 의기가 양양하다. 손학규 대표가 카터를 만났다고 하는데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까? 김정일도 만나지 못한 카터의 이번 평양 방문은 북의 입장만 대변하는 균형 잃은 노정치가의 쇼케이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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