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아들이 결혼 6년만에 처음 집을 장만했다. 집은 오래된 집이지만 집 전체 리모델링을 완벽하게 했고, 또 넓직한 정원과 수영장이 딸린 운치있는 집이다. 정원 한쪽에 오래 된 참나무가 있고, 장미꽃이 사철 온갖 색깔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서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집이다. 물론 집을 장만하기 까지는 누구보다 우리 며늘애의 공로가 제일 크다. 그애가 결혼하고 미국에 온지 9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잘 나가던 패션 디자이너였던 애가 영어도 부족한 미국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고, 또 회계사가 되기 까지는 본인의 부단한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즘 세상에 미국이나 한국이나 부부가 함께 벌지 않으면 집을 산다는 것은 꿈도 꿀수 없는 일이다.
이 집을 소개한 사람은 내 오랜 친구인 메리다. 그녀는 지난 수십년의 세월 동안 우리 집을 수 없이 팔아주고 또 사주고 한 장본인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때,우리 막내 아들은 다섯살 짜리 꼬마였다.그때 그녀는 오렌지 색깔의 큰 밴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막내가 그 차를 너무 좋아해서 그차를 타는 맛에, 집을 보러 가자면 두말도 없이 냉큼 차에 올라타곤 했다.사실 우리 가족이 5년 동안 텍사스에 가서 살고 왔을때, 메리는 집 뒷마당에 그 밴을 그냥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녀 말이 쟌이 크면 선물로 주려고 한다고 했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 말을 듣고 함께 크게 웃은적이 있다. 이제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내가 아닌 우리 아들이 또 메리에게 집을 사게 됐다. 대를 물려서 아들이 그녀의 고객이 됐다는 것이 마냥 기쁜 것만이 아니라 어쩐지 세월의 무게가 느껴져 마음 한켠이 스산하다.
메리! 엄마에 이어 그아들이 너의 고객이 된 느낌이 어때? 정말 클라식한 스토리가 아니겠어? 내가 어느날 그녀에게 그렇게 물었더니 자신은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정도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계속 아이 러브 잇! 아이 러브잇!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손님과 복덕방으로 만났지만 수십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사이엔 저절로 신뢰와 우정이 싹 텄다. 메리는 미시간의 어느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서 그런지, 그녀가 껄껄대고 웃는 소리만 들어도 그녀는 어쩔수 없는 시골 출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미국 속담에 시골 소년을 시골에서 꺼내 올수는 있으나 시골티를 소년에게서 떼어 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소박하고 까다롭지 않은 성품과 인간성을 좋아한다. 물론 자기 일에 성실하고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밀어 붙이는 집념도 있다.
집을 산후, 우리 막내가 나를 놀라게 한 점은 사람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웬만한 집안 일은 고치고 뜯어가며 수리를 한다는 점이다. 오래 손을 보지 않아 칙칙했던 그라지도 말끔하게 페인트도 하고, 직접 캐비넷도 달아서 완전히 새 차고를 만들어 놓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우리 남편이 꽤 괜찮은 핸디맨이라고 생각했는데 손재주는 아들이 한수 위였다. 한달에 두어번 그애들의 집을 갈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달라져 가는 그 집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마음이 흐믓해 진다. 그 조그맣던 꼬마가 자라서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서 예쁘게 꾸며 가며 알콩달콩 살아 간다는 것이 더 할수 없이 대견하고 그것이 또 나를 행복하게 한다. 아이들이 잘 살아주는 것만큼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걱정 없이 살아야 부모도 편안하고, 또 부모가 건강하게 살아줘야 아이들도 편안하다. 서로 서로가 각자 잘 살아야 서로를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들은 결국 뱃속에서 아이가 태어날때 부터 탯줄로 연결 되었듯이 이 세상에서도 하나로 연결된 관계다. 하나가 행복하면 다른 하나도 행복하고 불행하면 또 서로가 불행해 진다. 아무리 이 사회가 팍팍 해지고 나날이 인간 관계가 소원해 진다고 하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영원히 변치 않고 사랑하는 관계다.
요즘 나도는 말에 아들은 낳으면 일촌, 대학 갈때는 사촌, 군대에 가면 팔촌이 된다는 웃지 못할 말이 있다. 물론 자식을 놔주우야 할때는 보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주연이 아니고 조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랬던 것 처럼 그들도 그들의 가정이 우선이다. 엄마는 오직 빛 바랜 옛사랑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주말이 되었다. 나는 냉동실을 뒤져 몇가지 생선을 꺼내 놓고, 며늘애가 좋아하는 매운탕을 끓이기 위해 준비를 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군만두도 만들 생각이다. 날씨도 기막히게 화창하다. 아마 아들네 집은 날이 갈수록 더 아름다워 질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어 가듯 행복도 배가 되었으면 한다.
(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