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슬펐던 봄이었다. 어디 일본인만의 비극이었겠는가! 그 참상을 화면으로 보는 순간만큼은 우리는 같은 인류였을 것이다. 모두의 가슴속에 사랑과 소망을 빌어줄 벛꽃 축제도, 에도시대의 시인 바쇼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노래한 ‘마쓰시마(松島)여!’의 갯벌조개잡이 축제도, 시오가마(鹽釜)항의 혼(本)마구로 풍어제도, 한낮에 들이닥친 단 한차례의 쓰나미에 무참히 휩쓸려 버린 채 살아남은 이들의 가슴속에 차마 눈뜨고는 못 볼 처참했던 순간의 잔상과 슬픔만을 남긴 최악의 봄이 되고 말았다.
미야기현! 임진왜란 당시 무쓰지방(지금의 센다이) 백만석의 영주인, 시대의 풍운아 다데 마사무네(伊達政宗)는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에 의해 조선 출병길에 나서는데 그 군마의 차림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지금도 치장을 위해 곱게 빚은 스시를 다데 스시라 부르고, 수백 년을 사무라이칼을 빚어 내려왔던 이 명도가(名刀家)가 지금도 빚어내는 ‘마사무네’ 철인이 찍힌 사시미(회)칼은 스시맨이면 누구나 갖고 싶은 명도인 것이고 또한 이 집안이 대대로 빚어 내려오는 국화주인 정종은 지금도 우리 스시바의 최고 명주(名酒)인 것이다.
또한 이 지방 앞바다에서 잡히는 혼(本)마구로가 도쿄의 쓰끼지(地築) 수산시장에서 최고의 경매가를 갈아치우는 최상급의 참치로 대접을 받는 등 우리 스시바와는 전설 같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도시가 창졸간에 폐허로 변해 이름 없는 시신들이 뒹구는 지옥으로 바뀌다니 그저 망연자실 할뿐이다. 헌데 아직도 구천을 떠돌 원혼들을 위해 뼛속 깊이까지 오열을 삼키는 이들에게 그 옛날의 묵은 감정 하나만으로 철딱서니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위인들의 작태가 더욱 슬프다. 북받치는 설움은 땅을 치고 통곡해야 되고 못내는 졸도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누구에게 이들의 초연한 모습이 그들의 정체성마저도 의심이 가는 모양이다.
그뿐이랴! 조공 잘 바쳐서 얻어들은 ‘동방예의지국’을 거들먹거리며 모금함을 들이 내미는 어느 단체의 무지가 또한 슬픔을 더한다. 세계의 유수 경제학자팀은 근대 일본의 강함을 ‘사무라이’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했다. 1868년 명치유신 이후 칼을 찬 사내들은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일본은 배움의 장(場)을 학교보다 무도장을 우선했고 이들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다고 했다. 무사도는 잘 베는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거친 투쟁본능을 제어하는데 있다했다. 그리고 이 본능 속에 숨어있는 어떤 신성한 것을 믿는 것이라 했다. 에도막부(幕府)의 절대권력도 장군가의 병법사범인 야큐우가(家)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지 않았던가! 또한 천년의 다도(茶道)문화는 ‘침묵의 미덕’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제 센다이시는 살아 남은자들의 투혼과 그 땅에 태어난 숙명 때문에 죄 없이 죽어간 이들의 넋이 하나가 되어 먼 훗날 더 아름답고 더 멋진 전설의 도시로 태어날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 일본 음식을 백설공주가 먹은 독사과로 풍자한 만화가 실렸다만, 2008년 3월 뉴욕 타임스지가 맨해튼의 유명 스시바에서 수거한 참치의 중금속 오염정도가 위험수치를 넘겼다고 크게 기사화했을 때, 미식품위생국(FDA)은 우리 스시바의 역성을 들어주었음을 상기하고, 더 큰 시련이 오더라도 수백 년 역사의 스시 문화는 우리 스시맨들 손에 의해 살아남을 것을 자신하자. 그 기원이 고구려 주몽 휘하 군졸인 ‘싸울아비’에서 비롯됐다는 사무라이가 어쩌면 우리 스시맨이 최후의 보루가 될지도 모르겠다.
스시바는 마주하는 손님과 피차 예의와 범절을 지키며 맛의 미학을 창출해내는 공간이다.
긴좌(銀座)의 대를 물려 내려오는 전통의 스시집, 바에 앉은 여인이 옆자리 낯선 남자의 술잔을 채워주고는 조용히 자기 잔에 술을 따른다. ‘사무라이, 의식인 것이다. 이 여인의 붉은 입술연지가 술잔에 묻는 걸 감춰 주기위해 스시 쉐프는 붉은 무늬의 스기(杉)나무 나무잔을 내어준다.
칼을 쥔 자의 깊은 안목과 덕성이 부드럽게 살아 숨 쉬는 스시바를 손님은 사랑한다. 소식의 일인들이 대략 스시 10쪽쯤 먹고 나면 쉐프가 외친다 ‘오 아가리!’라고. ‘아가리’는 차(茶)를 의미 하지만 ‘가리(초생강)’ 한쪽 들어갈 자리도 없으니 이제 계산서를 달라는 스시바의 은어인 것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당당하고 환한 자세로 손님을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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