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은 어머니날이다. 나는 이 날만 되면 쥐구멍에라도 찾아들고픈 심정이다. 진방남이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이라며 한탄했듯이 내 어머니 생전의 나의 불효 탓이다. 어머니의 나에 대한 물불을 안 가린 짐승 같은 사랑을 생각하면 내 심정은 참담키만 하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 하겠느냐 만은 어머니날을 맞아 헤세의 ‘어머니의 꿈’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바깥 따스한 잔디밭에서 구름을 보고 싶어라. 그리고 고달픈 눈을 감고 꿈나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가고 싶다./ 오, 어머니는 이미 소리를 듣고 살그머니 나를 마중해 주며 멀리서 찾아온 나의 이마와 손을 조용히 그 무릎에 놓아주신다./ 어머니는 지금 부끄러운 생각 괴로운 슬픔으로 내가 고백하는 여러 일들을 물으실 것인가? 아니, 어머니는 웃으신다! 오랜만에 나와 함께 있음을 기뻐하신다!’
카니 프랜시스도 ‘그 어느 것도 절대로 어머니의 부드러운 포옹을 대신할 수 없어요, 마마 우리가 다시 한 번 함께 있을 그 날까지 나는 이 추억들 속에 살겠어요’라고 ‘마마’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불렀다. 시와 노래에서 보듯이 어머니는 늘 그리운 것인가 보다.
어머니의 사랑은 영화에서도 많이 묘사됐다. 어머니의 사랑은 부담이 갈 정도로 맹목적인 것이어서 많은 신파극의 좋은 자료가 돼 왔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바라 스탠윅이 나온 ‘스텔라 달라스’(Stella Dallas·1937). 하류층 여인이 딸을 상류층 남자와 결혼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얘기로 스탠윅이 비 내리는 밤거리에 서서 창문을 통해 딸의 결혼식을 지켜본 뒤 돌아서는 라스트신에 눈물이 핑 돈다.
이기적이요 반사회적이다시피 한 딸(나중에는 어머니의 애인까지 훔친다)을 위해 웨이트리스부터 시작해 온갖 궂은일을 하며 헌신하는 어머니(조운 크로포드)의 드라마 ‘밀드레드 피어스’(Mildred Pierce·1945)는 필름 느와르다.
크로포드는 이 영화로 오스카 주연상을 받았는데 이 얘기는 얼마 전 HBO가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5시간짜리 시리즈로 만들어 방영했다. 그러나 옛날 것이 훨씬 낫다. 그런데 크로포드는 실제로는 양딸 크리스티나를 철사 옷걸이로 패는 악모였는데 이 얘기는 페이 더나웨이가 크로포드로 나온 ‘마미 디어리스트’(Mommie Dearest·1981)에서 쇼킹하게 그려졌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모정 영화가 글래머 걸 라나 터너가 나온 ‘마담 X’(Madame X·1966).시댁의 강요로 갓난 아들을 포기한 어머니가 후에 살인혐의로 기소된 자신을 변호하는 아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끝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숨지는 최루영화다.
전쟁과 가난과 온갖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가정을 지키는 집안의 대들보 같은 어머니들도 여럿 있다.
나치의 치열한 폭격 하의 런던 교외에서 품위와 용기와 사랑으로 가정을 지켜가는 중류층 주부의 얘기 ‘미시즈 미니버’(Mrs. Miniver·1942)가 그 대표작.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윌리엄 와일러) 및 여우주연상(그리어 가슨) 등을 받은 이 영화는 미국이 역경에 처한 영국을 위해 궐기하는 촉매가 되기도 했다. 암탉의 품처럼 따스하고 안전한 어머니의 큰 가슴이 느껴지는 영화다.
이민 가족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자상하게 남편과 4명의 자식들을 돌보며 집안의 기둥 노릇을 하는 또 다른 어머니가 ‘나는 엄마를 기억해’(I Remember Mama·1948)의 마르타(아이린 던)이다. 1910년대 노르웨이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민 와 경제적으로 빠듯하게 살면서도 사랑과 정성과 온유로 가족을 지켜나가는 주부의 오손도손하고 정감있는 가족 드라마다. 그런데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노르웨이가 ‘엄마가 살기 가장 좋은 나라’로 나타났다. 한국은 조사대상 160개국 중 48위.
영화 속 모든 위대한 어머니 중 가장 위대한 어머니는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40)의 마 조드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존 포드가 감독한 영화는 경제공황 시대 집과 농토를 잃은 오키스 조드 일가가 남부여대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드라마.
마 조드(제인 다웰·사진-왼쪽은 헨리 폰다)는 가난과 굶주림과 차별대우 등 갖은 난관 속에서도 영혼과 감정이 건재한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집안의 불굴의 정신적 기둥 구실을 하며 한 가족의 현대판 출애굽기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마는 마지막에 이렇게 독백한다. “우리는 계속해 나아갈 게야. 우리야 말로 생존하는 사람들이지. 누구도 우리를 쓸어버리지 못해. 우리는 영원히 나아갈 게야. 우리가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모든 어머니에게 영광을 돌린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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