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혼인식보다 결혼식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혼인(婚姻)은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을 의미한다. 또 결혼(結婚)은 ‘부부로서 관계를 맺는 것’을 그리고 이혼은 ‘관계를 끊는 것’을 말한다. 가만히 보면 결혼의 반대말은 있는 것 같지만 혼인의 반대말은 없어 보인다. 옛날에는 혼인을 하면 평생을 함께 했기 때문에 반대말이 필요하지 않았고 또 오늘날 부부의 ‘연을 맺는’ 결혼이란 말이 더 많이 통용되는 이유가 혹시 ‘연을 끊는’ 이혼의 가능성 때문에 그런 걸까? 뜬금없고 생뚱맞은 생각인줄 알지만 어쨌든 필자는 결혼보다 혼인이라는 말이 더 정감 있고 좋아 보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가 바로 혼인이다. 영어에는 ‘to marry’라는 동사가 하나 있지만, 남녀구분이 있는 우리나라처럼 루마니아에도 ‘시집가다’ 동사와 ‘장가들다’ 동사 그리고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혼인하다’ 동사가 있다. 그런데 루마니아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종교적 혼인을 하다(a se cununa)>라는 의미의 동사가 하나 더 있다. 이 동사는 신부님이 하느님 앞에서 두 남녀의 혼인을 허락하는 종교적 의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에는 ‘법률적 혼인’외에도 ‘종교적 혼인’이라는 말이 있다. 법률적 혼인이라는 말은 구청이나 읍면사무소 등에서 혼인사실을 등록하는 것이고 종교적 혼인은 교회에서 신부님이나 목사님의 주관으로 혼인을 하느님께 맹세하는 의식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천주교 신자들의 종교적 활동은 상대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하지만 유독 성스럽고 종교적인 유럽의 혼인문화는 아직도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듯하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교회나 성당에서 식을 올리기도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비싼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호텔이나 고급 예식장을 선호하고 있다.
호텔이나 고급 예식장에서 거행되는 혼인식은 화려함을 강조한 나머지 너무 행사중심으로 진행된다. 모델 같은 여자들이 팡파르를 울리며 나타나기도 하고 또 예식홀 천장에서 신랑신부가 말(horse)이나 꽃바구니 같은 것을 타고 내려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예외 없이 예식홀 안이 어두워지면서 신랑신부를 향해 조명이 집중된다. 문제는 이런 유의 예식을 많은 예비 신랑신부들이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름지기 호텔이라는 곳은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별의 별 사람들이 모여드는 신성(神聖)치 않은 곳이다. 오늘날 한국의 예비 신랑신부들은 호화스러운 호텔의 겉모습만 보고 호텔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호텔이라는 곳은 특히 글로벌 시대에는 없어서는 안 될 현대 문명의 중요한 일부이긴 하지만 일생일대의 인륜대사(人倫大事)를 꼭 이런 곳에서 치러야할지는 한번 생각해 봐야할 일이다. 반면 유럽인들은 혼인식을 거행할 때 일부러라도 깨끗하고 또 깨끗한 장소를 찾아 식을 올린다. 물론 대개가 교회이다. 혼인식을 성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혼인식은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주로 주말에 여러 쌍의 혼인식이 동일한 장소에서 줄줄이 거행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예식이 끝난 뒤 빠져나가는 사람들과 다음 예식을 준비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뒤섞일 때면 발 디딜 틈이 없다. 한국에서 혼인식이 번잡한 것은 부조(扶助) 문화도 큰 몫을 차지한다. 부조문화는 세계 어디에나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발전된 것 같다. 과거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혼인식을 치르기 위해서 품앗이 형태로 이루어진 순수한 의미의 부조문화가 변질되어 지금은 가족과 휴식을 취해야 할 주말에, 심한 경우 예식장 2-3곳을 들리기도 한다. 각종 경조사로 인해 사람들은 바쁘고 한국의 주말은 그리 평온하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 예식장을 가보면 예식 순서에 꼭 ‘케이크 커팅’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호텔 측의 수익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혼인 첫날부터 신랑신부가 손에 칼을 들고 뭔가를 꼭 절단(切斷)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2009년 한국결혼문화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신혼부부의 평균 혼인비용이 1억 7,542만원이라고 한다. 그 중 70% 정도가 신혼집마련에 사용된다지만 나머지 비용을 계산 해봐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려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혼인생활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할 즈음에 기존의 혼인문화를 꼭 따라야만 하는지 또 시작부터 너무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