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의 자라난 배경이나 자신의 환경에 따라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밤마다 깨는 바람에 당시의 소원은 하루에 8시간씩 매일 자는 것이었다. 수면 부족으로 아들을 데리고 장을 보다가 산 물건들을 카트에 둔 채로 아들만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떤 사람은 애를 데리고 온 것만도 천만 다행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잠을 좀 자야할 텐데 걱정이라고 했다. 당시 경제적으로 좀 어려운 사람은 “도대체 얼마치를 사서 두고 왔느냐?”고 물었다. 정말 사람들의 생각은 각양각색이다.
얼마 전, 한국 외교가를 흔들었던 상하이 스캔들에 관한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 그 며칠 후, 이에 대해 한 여성 독자의 반박의 글도 곧이어 신문에 실렸다. 사람들의 생각은 지문이나 DNA 만큼 다양하다. 그래서 미국 속의 우리는 인생이 단조롭지 않고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날, 다른 여성 독자로부터 그 칼럼과 반박에 관한 글이 날아왔다. 또 다른 오피니언이라 허락을 받고, 여기 게제한다.
“아주 예의 바르게 쓴 반박의 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힘입어 하와의 죄가 다른 각도로 해석되어 가고 있다니 여성의 한 사람으로 기뻐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존중하고 도우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회가 될까, 저도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폴 손 칼럼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의 반박이 아니고, 핵심을 말하기 위해 그려 넣은 배경의 반박이었다는 점이예요. 덩 여사와 우리나라 일부 외교관들의 한심함에 울분하는 그 칼럼의 핵심 말입니다. 사실 ‘여자를 조심하라’는 말은 오리진이 폴 손이 아닙니다. 성경의 잠언에는 그 말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나쁜 여자를 조심하라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남자들에게는 좋은 여자 나쁜 여자를 구별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싸잡아서 여자를 조심하다 보면 그래도 좀 실수를 덜할까 해서 나온 말이고 나부터서도 우리 아들들 장가들기 전에 자주 쓰던 말입니다. 여성의 위치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한참을 더 가야하는 21세기입니다.
박 경아님과 같은 분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기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수년전 이 문열씨의 소설 <선택>이 페미니스트들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시작은 소설 <선택>이었지만 결국은 이문열 작가에게 갔습니다. 내 나이가 60을 한참 넘어서인지는 몰라도 내가 본 <선택>에서는 이조시대의 남존여비 사상 속에서도 굳세게 자기의 능력을 펼쳐 나가는 반가의 여인상이 주제였지, 여성비하의 시대가 이문열 작가의 창작이 아니고 다만 있었던 그 시대를 백그라운드로 썼다고 생각했어요. 이문열 작가는 <선택>을 집필할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페미니스트들의 뜨거운 반응에 놀랐다고 하듯이 폴 손님도 놀랐을 것입니다.
창작과 해석, 그리고 비평은 각자의 몫입니다. 대화의 기술인 셈이지요. 매주마다 칼럼 잘 읽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고방식을 풍자한 아담과 하와에 관한 조크를 하나 소개한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고 있고 그 한쪽으로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그림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네 친구가 지나가다 이 그림 앞에 섰다. 누군가 먼저 “어느 나라 사람 같으냐?”고 물었다. 첫째 친구의 생각은, “부부가 합의해서 선악과를 땄으니 너무 신사적이라 영국인들 같다.” 둘째 친구는, “저렇게 성 개방이 되었으니 프랑스 사람들 같다”고 했다. 셋째 친구는, “저렇게 헐벗고 굶주려도 저곳이 낙원인줄 알고 있으니 북한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넷째 친구는 한참 쳐다보고 있다가 드디어 나지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한국 사람 같지는 않아. 한국 사람이라면, 선악과보다는 뱀을 먼저 잡아 먹었을텐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 이 지역만 하더라도 색깔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데다 생각도 다르고, 사는 모습은 더더욱 달라서 유사점을 찾기보다는 상이점을 찾는 것이 더 편하고 빠르다. 다양한 생각으로 다양한 발명을 이뤄 삶의 질을 향상시키니 획일적인 삶보다는 다양한 삶이 흥미롭고 더 조화를 이룬다. 타인종의 언어를 배워보면, 왜 그들의 생활풍토에서 그러한 단어가 필요했는지를 깨달을 때가 있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 또한 흥미를 돋운다. 학창 시절 때엔 국어와 생물을 제일 못했었는데, 지금까지 벌써 100편이 훨씬 넘는 칼럼을 써왔다니 스스로 놀랄 따름이다. 둔한 필을 가지고 오늘까지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독자 여러분들의 다양한 관심과 격려였음을 말하고 싶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