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지도자들이 미국에 오면 백악관과 국무성에서 회의를 갖는데 더해 워싱턴 포스트를 찾는 경우가 많다. 뉴욕타임스지 다음으로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신문인데다 미국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이 다 보는 신문이기 때문에 포스트의 담당 기자들이나 논설위원들이 초청할 때 흔쾌히 응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최근의 예로서는 다음 달이면 취임할 아이티의 미켈 마텔리(Michel Martelly) 대통령 당선자이다.
필자처럼 고전음악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들어볼 기회도 없었겠지만 마텔리 당선자는 Sweet Micky라고 알려진 카니발 가수란다. 20여년에 걸쳐 대단한 대중 인기를 유지해왔다는 Sweet Micky는 악명이 높다고 포스트의 한 칼럼이 지적한다. 예를 들면 기저귀를 차고 무대에 나타나는 것은 약과이고 온갖 외설스러운 행위도 서슴지 않을 뿐 아니라 청중이 따라 부르는 가사도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 등 음담패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니 19명이 뛴 대통령 선거전에서 그가 코케인을 사용했었다거나 플로리다에 있는 그의 저택들이 공매 처분되었다는 폭로에 놀랄 사람들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그 같은 역사를 가진 마텔리 당선자가 짙은 신사복에 점잖은 넥타이를 매고 일단의 보좌관들에 둘러싸여 워싱턴에 온 이유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국제 원조기관들과의 회담 때문이었단다. 남북미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아이티는 엄청난 문제꺼리를 안고 있는 나라다. 허리케인의 잦은 강타 때문에 매년 생겨나는 수만 명의 이재민들도 큰 문제인데 작년 1월에는 대지진이 발생하여 대통령궁을 포함한 많은 공공건물들과 허술한 주택들이 폭삭 무너지는 바람에 무려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만 이상의 사람들이 집을 잃고 고생하게 되었다. 그중 아직까지도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직장도 없이 천막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이티의 비참한 현실이다. 마텔리 당선자의 공약 가운데는 지진 피난민들을 영구 주택에 재정착시킨다는 것과 무료 교육 그리고 실직 문제의 해결 등이 들어있지만 지진 발생 직후에 외국 정부들이나 원조기관들이 약속했던 원조금들의 상당 부분이 이런 저런 사유로 전달되지 않은 상태라서 공약 이행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 그가 1991년의 쿠데타로 민선 정부를 전복시킨 군사 지도자들과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포스트지는 그 후에 없어진 군대 조직을 부활시키겠다는 마텔리의 구상에 대해 회의적이다. 포스트의 칼럼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통령궁 지붕 위에서 (가수로서 하던 대로) 발가벗고 춤추겠다고 약속한데 대한 질문에 대해 그가 “만약 3, 4년 후에 모든 사람들이 학교에 다니고 직장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나는 행복해서라도 기꺼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한 말로 끝난다. 그러나 “아마도 정장을 하고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꼬집기를 잊지 않는다.
아이티의 불안한 장래를 보면서 인간 관심의 한계를 생각해 봤다. 작년 1월의 대지진 때는 세계의 모든 이목이 아이티에 집중되었다. 전 세계적인 미디아만 아니라 한국 신문들마저 그곳에 특파원을 보내 이재민들의 참상을 전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두어 달도 못되어 우리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아이티 사람들의 고생이 끝나고 문제들이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곳들에서 발생된 지진 등의 자연 재난들이나 전쟁과 테러 등의 유혈 사태들이 우리의 시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큰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폭발되기 때문에 우리의 눈과 머리는 지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몇 달이 지난 것도 거의 잊어버려야 현재 당장 발생하는 대사건이나 재앙의 정보 처리와 수용이 가능한 모양이다. 리비아의 가다피나 시리아의 아사드 등의 장래도 아주 복잡다단한 국내외 사정으로 쉽게 속단할 수 없고 또 정치인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기 때문에 금방 관심을 딴 데 돌리게 된다. 그리고 세계 주변의 사건들 대부분이 bad news인 고로 영국 왕세손이 케이티 미들턴이란 평민 출신의 대학 동창생과 결혼하는 것이 본인들만이 아니라 영국 왕실의 희소식이기 때문에 예외도 있겠지만 거의 전 세계적인 관심사인 것이다. 그런데 호사다마랄까 그들의 결혼이 처녀 총각의 결합이 아니라 이미 동거생활을 했었다는 사실과 영국도 경제 사정이 나빠 왕궁 부근에도 홈리스들이 있다는데 그 엄청난 결혼 비용이 정당한가와 더 근원적으로 왜 왕실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 때문에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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