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 C내외와 함께 저녁을 먹은 뒤 포도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사진)의 결혼으로 돌아갔다.
둘의 결혼을 놓고 미국의 미디어들은 지상 최대의 쇼나 취재하듯 난리법석을 떨고 있는데 윌리엄의 조모인 현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의 결혼을 ‘국민의 결혼’이라고 불렀던 것에 비하면 소위 ‘세기의 결혼’이라 일컫는 손자의 결혼은 할머니의 그 것보다 격상된 느낌이다.
우리는 군주제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것에 대해 나만 빼고 나머지 세 사람은 있음직할 만한 제도라는 의견들이었다. 셋은 군주제가 상징적 가치와 전통의 유지 및 많은 왕족들이 국민의 귀감이 되어 왔고 또 흥미도 있다는 점에서 그런 뜻을 표했다. 단 통치하지 않는 한에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나는 그 것이 아무리 명목상이라지만 사람의 신분에 차이를 두는 제도가 달갑지 않다. 영국 국민들은 왕이나 여왕의 ‘서브젝’(subject)이라 불리는데 이 단어에는 ‘지배를 받는다’ 또는 ‘종속된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왕과 국민은 주종관계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이튿날 난 도대체 군주제를 시행하는 국가의 ‘신민’들의 이 제도에 대한 의견이 궁금해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6명의 동료기자들에게 E-메일로 물어봤다.
네델란드의 테오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군주제가 민주주의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구닥다리 체제(앙시앙 레짐)라는 답을 보내 왔다.
영국의 존은 자못 신랄했다. 그는 “난 로열리스트가 아니다. 왕족은 관광객 유치로 국가 재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본다”면서 “나를 비롯해 내가 아는 사람들은 윌리엄의 결혼에 대해 관심이 없지만 그 날이 공휴일로 지정돼 일 안해 행복해들 하고 있다”고 비아냥댔다.
군주제에 단호히 반대하는 또 다른 영국 사람이 배우 헬렌 미렌이다. 내가 오래 전 그를 인터뷰 할 때 “당신은 군주제를 믿는가”라고 물었더니 미렌은 한 마디로 “노”라고 대답했었다. ‘여왕’으로 오스카상을 탄 미렌은 자기가 화면에서 묘사한 실제 여왕의 사적 저녁식사를 위해 버킹엄궁으로 초대를 받았지만 영화 촬영 스케줄을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스페인의 파스는 아주 심각했다. 파스는 “난 군주제를 믿지 않는다. 우린 민주정부와 의회가 있는 만큼 과거에 속한 체제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라고 답신했다. 그런데 파스는 스페인 왕족의 친구다.
나하고 친한 스웨덴의 키다리 마그너스도 마찬가지. 그는 “나는 군주제를 안 믿는다. 우리나라엔 왕과 왕비와 공주와 왕자가 있지만 군주제는 과거의 것이요 민주주의에 합당치 않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나 그 것의 상징적 가치는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또 노르웨이의 오드도 “그 것은 나라 선전과 광고에선 OK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연 관심 없다”고 짤막한 답을 했다.
그런데 네델란드의 테오는 열렬한 군주제 신봉자다. 그는 “그렇다. 홀랜드의 왕족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여왕은 비록 상징적이긴 하나 법에 있어서 최종 발언권을 갖고 있다”면서 “난 군주제의 열성분자”라고 말했다.
일본의 황족도 한 단계 높은 왕족이니만큼 난 유키에게도 물었는데 그는 그 것
에 대해 오불관언이라는 태도를 보내 왔다. 유키는 “내 세계에서 황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서 “황족은 장식일 뿐으로 통치하지 않는 한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면서 유키는 “그러나 난 역설적으로 영국 왕족은 마음껏 즐기고 있는데 그들은 너무 재미있다!”라고 느낌표마저 달아 대답했다.
유키의 말처럼 윌리엄과 케이트의 결혼을 비롯해 영국 왕실의 일거수 일투족이 대중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재미 있는 오락거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난 윌리엄과 케이트의 결혼을 둘러싼 미디어와 대중의 불난리를 보면서 이들이 윌리엄과 케이트가 주연하는 인형극을 보면서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둘이 무료한 일상에 지친 평민들의 알록달록한 장난감이자 꼭두각시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어릴 때 읽던 동화 속의 왕자와 그의 평민 애인의 사랑에서 느끼던 로맨틱한 감정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군주제에 대한 호응은 어쩌면 이런 지나간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것은 모두가 그립게 마련이다.
그런데 군주제는 한반도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 3대를 이어 내려오는 북한 정권의 체제야 말로 현대판 왕조의 모델 케이스라고 하겠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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