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TV방송을 보면 사실 별 재미가 없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기 일쑤다. 그런데 미국의 TV광고를 보고 있으면 한국과는 비교되는 몇 가지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한국의 TV광고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 연예인들이 등장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좀처럼 세계적인 할리우드 스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TV홈쇼핑 채널에서는 미국에 비해 좀 더 다양한 물건들이 취급되는 것은 물론 이따금씩 고가의 물건도 판매하지만 미국 TV의 경우에는 대개가 건강과 관련된 것들이고 또 이들 대부분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19.95달러 혹은 29.99달러짜리 물건이 많다.
사실 오늘날 광고 마케팅에서는 9라는 숫자가 많이 사용된다. 이는 소비자의 심리를 겨냥해 물건 가격의 끝수를 9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달러보다는 19.95달러나 혹은 19.99달러라는 가격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소비자의 심리적 부담을 줄여 구매로 이어지게끔 하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한 사람은 체코의 토마쉬 바짜(Tomas Bata)인데, 오늘날 그의 마케팅 전략을 일컬어 ‘바짜의 가격’이라고 한다.
19세기 말 바짜는 자신의 형인 안토닌(Antonin)과 함께 신발회사를 세워 기존의 가죽신발 대신에 오늘날의 운동화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화를 생산하면서 회사를 성장시켰다. 하지만 전후의 경제침체로 인해 자회사가 위기에 직면하자 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차원에서 바짜의 가격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은 미국에서도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물론 서울의 물가도 만만치 않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하고 있는 어떤 한인들은 이곳의 물가가 서울보다 더 비싸다고 말하지만 그 반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등록금이나 건강보험료 등을 생각하면 당연히 미국의 물가가 비싸지만 고기, 과일 등 생필품 가격이나 휘발유 가격 그리고 사교육비 등을 생각하면 서울이 더 비싸다. 그렇지만 이들 두 지역은 세계에서도 물가가 가장 비싼 곳이기 때문에 어디가 더 비싼지 따져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다 보면, 이들 두 지역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화폐 단위에 다소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20달러와 5만원이 그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보통 20달러 선에서 소비가 이루어지지만 서울에서는 5만원 선에서 이루어진다. 이 말은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에서 사용되는 화폐 가치의 기준이 각각 20달러와 5만원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선물을 살 때 보통 20달러 내에서 구입한다. 또 미국의 TV광고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의 가격도 대개는 19.95달러나 혹은 19.99달러인 경우가 많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은행의 현금 자동입•출금기(ATM)에서 출금할 수 있는 최고권액도 20달러이다. 만약 50달러나 100달러짜리 화폐를 출금하기 원할 경우에는 직원이 있는 은행 내의 일반 창구를 이용해야 한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20달러가 화폐가치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각종 경조사비는 물론이고 선물상품권을 주고받을 때에도 5만원 상당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09년 6월, 한국 사회에서 5만원권 화폐가 처음 발행된 이후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있는 5만원권 화폐의 총액이 20조 1,076억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5만원권 화폐가 발행된 지 1년 9개월 만에 1만원권 화폐의 총액을 추월한 수치인데, 장수로 따져보면 약 4억 215만장으로 국민 1인당 8.2장씩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30일 한국은행은, 2010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 759달러를 기록해 2007년 이후 3년 만에 2만불 시대로 다시 복귀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은 인구 2,000만 명 이상인 국가만을 따졌을 때 세계 10개국 내에 속하게 됐다. 이에 반해 미국의 경우에는 1인당 국민총소득이 4만 4,999달러로 호주 다음으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
결국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소비 행태를 보면 2배가 넘는 셈이다. 한국인 특유의 체면치레나 허례허식 때문에 우리의 소득수준을 생각하지 않고 혹시 과소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