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나라가 인근 나라의 문화재를 약탈 하는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었다. 유럽강대국들이 약한 나라의 국보급 문화재를 뺏어다가 그들의 박물관에 갖다놓고 옮겨온 문화를 즐긴다. 약탈된 문화재의 진가를 인정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박물관이나 도서관 창고에 처박혀 그 값어치가 알려지기까지 많은 세월이 걸린다. 정부기관이 관여된 것은 경우가 다르지만 점령군이나 개인이 반출했을 때는 소재를 알 길이 없다. 이번에 프랑스에서 대여 형식으로 받은 외규장각도서도 정부가 관련되어 그나마 다행스럽게 알게 됐다. 한국 학자의 노력이 없었으면 지금도 빛을 보지 못하고 창고에 있었을 터인데 그나마 다행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도서 297권 가운데 1차분이 4월 14일에 서울에 도착했다. 조선이 가난할 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빼앗긴 한국의 문화재가 돌아온 것이다. 그래도 한때는 세계를 호령하던 나라가 빼앗은 것을 그냥 돌려줄 수도 있었는데 인색하게 대여 형식으로 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속 좁은 처사다.
150여 년 전에 가져간 것은 물론 가깝게는 일본이 한국에서 약탈해 간 것만 해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가져간 것 이외에도 개인 소장가들이 수집해 간 것도 대단하다. 역설적인 이야기로 일본수집가들 때문에 한국 도자기의 진가가 국내와 국외에 알려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에 한국 골동품 수집가 중에 동포 수집가들과 함께 한국예술의 진가를 아는 미국사람들도 많다고 알려졌다. 예전에는 선교사들이 갖고 온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귀환하는 미군들이 기념품으로 갖고 온 골동품과 그 값어치를 알고 반입한 외교관도 있다고 한다. 들리는 이야기에 자유당 시절 미 대사관 문정관 그레고리 핸더슨 같은 이는 당시 갖고 온 문화재급 골동품들이 작은 박물관을 채울 수 있는 많은 수량이라 한다. 그리고 한국 예술품의 대가가 되었다. 한국의 군부가 집권한 후 정치자금이 필요하여 고미술품을 일본에 팔고 그 일부가 미국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을 밝힐 근거는 없다. 한동안 한국 골동품을 이곳에서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다. 오래전에 이조백자와 고려청자를 우리 동포 가정이나 한국에서 근무했던 백인 집에서 보기도 했다. 듣기로는 한국에서 골동품상들이 이런 개인 소장품을 구입하려고 인맥을 통해 미국을 자주 온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 친지에게 미국에서 종교학을 공부한 일본 학자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이 사람은 미국에서 한국 고미술품을 구입하여 일본 수집가에 되팔고 구전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근래에 영국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사건이 신문에 보도됐다. 런던에 베인브리지 예술 옥션 하우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델리케이트 하고 아름다운 16인치 높이의 화병이 경매에 붙여졌는데 출처는 세상을 떠난 부모 집 헛간을 남매가 정리하다 발견된 중국 것이었다. 이 신기한 화병을 발견하고 주위의 권고로 감정을 받으니 백만 달러 이상이 된다고 하였다. 수소문하여 옥션 하우스의 경매에서 80만 달러로 시작해서 8천6백만 달러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로 낙찰됐다. 이 화병은 예술 애호가였던 청나라 건륭황제(1735-1796)를 위하여 만들어진 특별한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보배가 그들의 집에 있게 됐는지 알 수 없는데 조상 중에 한사람이 영국군에 근무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편전쟁(1856-1860) 때 자금성을 침범한 군인이 노획물로 갖고 온 것이었는가 보다. 그 값어치가 거의 150여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 액수에 입찰한 사람이 중국 사람이었고 전화로 대리인을 시켜서 구입했다고 한다. 그 구입에 중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해외에 산재한 그들의 문화재를 중국은 이렇게 엄청난 액수를 지불하고 되찾는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건륭황제의 옥쇄 등 여러 문화재를 외국에서 비싸게 구입했다고 한다. 한국도 이런 모습에서 배우는 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외규장각 도서도 대여형식이 아니고 어떤 경로로든지 중국처럼 구입할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그런 아쉬움이다.
(경영학 박사/C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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