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에 무슨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라는 의심이 든다면 이 책을 보라고 시인 류시화는 권했다. "성격과 결심이 잘 합쳐지면서 한 평범한 사람이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TV 앵커 탐 브로커는 말했다.
2006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세 잔의 차’, 그리고 그 책의 저자인 자선사업가 그레그 모텐슨(54)에 대한 칭찬들이다. 미국이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위협과 아프간 전쟁에 대한 피로감에 휩싸여 있던 당시 그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테러를 무찌르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테러범들이 존재하는 이 나라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곳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생산적인 시민이 되는 것과 테러범이 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교육이 그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대 아프간 정책이 성공하려면 군사력 증강만으로는 안 된다고 그는 역설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서서히 진화하는 것, 책의 제목처럼 한번, 두 번, 세 번 차를 같이 마시면서 차근차근 형성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중앙아시아 오지의 흙냄새를 풍기며 전하는 그의 말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꽂혔다.
지난 몇 년 ‘세 잔의 차’는 한편의 아름다운 현대판 신화였다. 1993년 여동생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히말라야 등반을 떠나고, K2 정상 정복 직전에 악천후로 조난을 당하고, 사경을 헤매는 그를 고산 마을사람들이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고,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학교라는 사실을 안 그가 미국으로 돌아와 손이 부르트도록 편지를 쓰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며 모금을 하고, 마침내 첫 학교를 지은 후 아프간과 파키스탄 오지에 학교 짓는 사업을 자신의 평생소명으로 삼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감동의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춘 이 책으로 모텐슨은 세계적 유명인사가 되었다. 희망과 기적을 만드는 영웅으로 격찬 받으며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까지 했다.
이제 신화는 깨어지고 영웅은 추락했다. 지난 17일 CBS의 시사프로그램 ‘60분’은 책의 내용이 상당부분 허구이고 모금된 기부금은 엉뚱한 데 쓰였다고 주장했다.
1996년 설립된 그의 자선기구 중앙아시아협회(CAI) 웹사이트에 의하면 그는 170개 학교를 세워 6만8,000명의 어린이들이 교육혜택을 받게 했다. 하지만 그의 CAI가 세웠다는 학교들 중 상당수는 존재하지 않거나 다른 기관이 세웠고, 몇몇은 건물만 덜렁 있을 뿐 교육활동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60분’은 주장했다.
2009년 CAI가 받은 기부금 중 본래 목적에 쓰인 액수는 4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텐슨의 책 홍보 여행이나 광고 등 개인경비로 쓰였다는 주장이다. CAI는 그의 ‘현금인출기’였을 뿐이라고 했다.
돈은 윤활유의 특성을 갖는다. 어떤 관계든 ‘오가는 현금 속에’ 더욱 긴밀해지고, 영리와 무관한 일을 할 때도 돈이 좀 돌아야 원활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딱 그만큼이다. 돈이 너무 많이 밀려들면 관계도 일도 익사해버리는 것이 돈의 또 다른 특성이다.
’세 잔의 차’가 베스트셀러가 된 후 CAI로 쏟아져 들어온 성금은 연간 2,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아울러 일약 유명인이 된 그는 한번에 3만 달러의 강연료를 받으며 강연을 다녔다. 학교 지어주겠다던 약속을 지키느라 아끼던 등산장비며 책을 팔고 중고차까지 팔아야 했던 90년대 중반 그의 모습과는 천양지차이다. 처음의 싱그러운 헌신의 열정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나 미주한인사회의 봉사단체 대표들 중에도 ‘변질’ 의혹이 제기되는 케이스가 종종 있다. 대부분 돈이 사람을 변질시킨다. 비영리 기구일수록 공금에 대한 감사가 철저해야 하는 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하다. 감사가 허술하거나 아예 없어서 단체의 대표가 개인 돈처럼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세상 사람들의 박수까지 받게 되면 처음의 봉사 의지는 방향감각을 잃고 만다.
’세 잔의 차’는 지금 ‘세 잔의 거짓’으로 조롱 받고 있다. 일반 사기사건보다 더 나쁜 것은 ‘세 잔’에는 영감과 감동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면서 비영리단체들은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다. 세상의 소금이던 사람들이 짠맛을 잃으면 세상에 끼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