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락사락 눈 내리 듯 조용조용 이야기를 풀어내는 한국 작가, 신경숙(48)씨의 소설이 이번 주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2008년 가을에 출간돼 장기간 베스트셀러였던 ‘엄마를 부탁해’가 5일부터 영문판 ‘Please Look After Mom’으로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공식판매를 앞두고 뉴욕타임스가 두 번에 걸쳐 서평을 실었고, 다른 언론과 대형서점·출판관련 사이트들도 줄줄이 서평을 내놓았다. 대부분 호평이어서 반갑고, 무엇보다 한국 작가의 책에 이만한 관심이 쏠린 것이 처음이어서 반갑다. 한국 문학이 좀처럼 닿지 못하던 미국 독자들의 가슴을 신경숙씨가 가만가만 헤집어 놓는 것 같아서 반갑다.
’엄마를 부탁해’는 한국적 정서가 매우 강한 작품이다. 시골고향의 노부모, 서울로 유학 가서 자리 잡은 자녀들, 전통과 현대라는 전혀 다른 삶의 조건이 빚어내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의 괴리 - 한국의 숨 가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겪은 중년세대라면 말 안 해도 알만한 정서가 소설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야기는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복잡한 서울 지하철역에서 실종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항상 거기에 있었고, 영원히 거기에 있을 것으로 여겼던 엄마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 앞에서 가족들은 자책하고 후회하고, 엄마가 얼마나 큰 버팀목이었던 지를 뼈아프게 확인한다. 엄마에 대한 무심함이 그 가족만의 일이 아니어서 독자들은 책을 덮으며 가슴 먹먹한 통증을 느낀다.
그런데 이 지극히 한국적인 ‘엄마’가 미국 독자들의 가슴에도 가서 닿고 있다.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재미에 자기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이 아깝고, 필시 무릎 덧댄 헤진 내복 입고 있을 우리 구세대 엄마의 원초적 모성에 미국 독자들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족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감동적 소설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작가는 "엄마의 상징성이 미국에서도 소통되고 보편적 공감대를 이룬 것 같다"고 했고, 한국 신문의 한 기사는 "엄마라는 말에는 국경이 없다"고 썼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보편적 감성을 담고, ‘국경 없는 엄마라는 말’을 담는 그릇인 책에는 국경이 있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는 것은 그 책이 한국 작품들 중 유일하게 ‘보편적 감성’을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책은 정서적 국경이 특별히 높은 상품이다. 무명작가의 책에 독자들이 무관심하듯, 한 사회에서 무명인 나라의 책에 독자들은 무관심하다. ‘엄마를 부탁해’의 대중적 성과는 미국사회가 한국의 것을 받아들일 만큼 정서적 토양이 무르익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생활 초기이던 1984년 ‘가라데 키드(The Karate Kid)’라는 영화를 보면서 일본이 몹시도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백인소년이 이웃의 일본노인에게 가라데를 배운다는 설정인데 한 꺼풀 벗기고 보면 일본문화 홍보영화다. 일본노인이 브로큰잉글리시로 전하는 모든 일본적인 것에 대해 영화 속 인물들은 물론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감복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던 것은 일본에 대한 미국 대중의 마음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은 최고의 인기 브랜드였다 자동차하면 도요타, 전자제품 하면 소니가 시장을 휩쓸었다. 미개 음식 취급 받던 스시와 사시미는 어느새 최고급 음식이 되었다. 일본말 좀 하고 젓가락질 하면 대우를 받을 만큼 일본적인 모든 것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이 서서히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80년대 첫 선보일 당시 불량제품으로 낙인찍혀 고전했던 자동차는 해가 다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90년대만 해도 세일 때 공짜로 끼워주던 전자제품은 최고급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상품을 통해 한국과 친숙해진 미국 대중은 이제 음식과도 가까워지고 있다. 김치, 비빔밥, 불고기, 갈비, 잡채 정도는 즐겨야 문화인 행세를 한다. 한국적인 것에 미국인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신경숙씨는 이번 소설을 일종의 ‘첫눈’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첫눈은 잘 쌓이지 않지만 계속 내리다 보면 언젠가는 천지가 눈으로 덮일 것이라고 했다.
눈 내릴 만한 기후 조건이 무르익고 ‘엄마’가 그 첫눈이 되었다. 첫눈이 성공했으니 한국 문학의 미국진출은 앞으로 활발해질 것이다. 미주한인사회의 위상과 무관하지 않은 변화이다. 영문판 ‘엄마를 부탁해’를 한인사회에서도 적극 나누었으면 한다. 우리 2세, 3세들에게는 한국의 정서를 경험하는 각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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