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생이 있는 집집마다 속 끓이고 가슴 졸이던 3월이 지나갔다. 대학 지원자가 날로 늘어서 경쟁은 해가 다르게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는 특히 UC 계열대학들이 포괄적 입학 사정제를 본격 적용하면서 한인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이래저래 실망한 케이스들이 많다.
12학년생 가족들에게 지난 한달은 희로애락이 죽 끓듯 교차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였다. 가장 바라던 대학에서 불합격 통보가 날아들어 죽을상이 되고, 무난히 될 줄 알았던 대학에서 떨어져 충격을 받고, 의외의 합격 통보에 벙글거리고… 그렇게 울고 웃으며 3월을 통과했다.
자녀가 입학할 대학이 대충 정해진 지금 부모들의 심정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아쉬움. 자녀에 대한 아쉬움이다. 이번에 아들을 대학에 보내는 한 아버지가 말한다.
"아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더 나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 텐데. 한국에서 우리는 고3 때 이를 악물고 공부했는데 여기 아이들은 그런 게 없어요. 급한 것도 없고, 기어이 뭘 이루고 싶다는 절실함도 없고…"
딸보다는 아들 가진 부모들이 주로 공감하는 내용이다. 머리는 좋은 아이가 좀 계획성 있게, 좀 착실하게 준비를 했다면 결과가 훨씬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많은 부모들이 토로한다.
다음은 후회. "아이를 좀 더 다그쳤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부모 자신에 대한 후회이다. "입시지옥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라도록 해줘야지"하던 부모들이 막상 자녀가 대학 갈 때가 되면 한차례씩 후회를 한다. 딸을 칼스테이트 계열대학에 진학 시키는 한 아버지의 말이다.
"올해 아이를 대학에 보내는 동년배 친지가 여러 명 됩니다. 하버드, 예일, 유펜 가는 아이들이 있고, 딸의 단짝 친구들은 UC계열에 들어갑니다. 아이를 너무 내버려 둔 게 아닌가 한편으로 후회가 됩니다. 딸이 혼자 알아서 공부하겠다고 해서 학원에도 보내지를 않았거든요."
이런 아쉬움과 후회의 근원은 자명하다. 아이의 엉덩이를 떠밀어서 꼴찌로라도 소위 명문대학이라는 기차에 태우고 싶은 바람이다. 성적 몇 점 차이가 1호선(일류대학), 2호선(이류대학) …으로 탑승노선을 가르고, 각 노선의 종착역에서 직장이 연결되면서 인생 전반에 크나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인식이 우리에게는 깊다. 그러니 우격다짐으로라도 아이를 공부시켜 한 등급이라도 높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
정말 그런 걸까? ‘1호선’ 타면 일류직장 잡고 일류로 생활할 수 있는 걸까? 아이비리그 출신들의 평균연봉이 이름 없는 시골대학 졸업생들의 평균연봉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출신 대학 자체가 연봉상승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스테이시 데일, 앨런 크루거라는 두 경제학자는 대학별로 졸업생들의 소득을 비교 연구했다. 그 결과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 보다는 어느 대학을 지원했느냐가 오히려 장래의 소득을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똑같은 SAT 점수로 유펜에 지원한 두 학생 중 한명은 합격하고 다른 한명은 떨어져 펜스테이트에 간 경우, 세월이 지난 후 보니 소득 차이가 없더라는 것이다. 졸업한 대학의 이름보다는 그 대학에 갈 만한 자질과 능력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사교육과 자기주도 학습의 장기적 효과를 비교했다. 사교육은 보통 부모에게 등 떠밀려하는 공부. 고교 때 사교육을 받은 학생과 자기 스스로 공부한 학생을 비교하니 후자의 대학 학점과 실질임금 상승효과가 현격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이든 자기가 원해서 해야 효과가 있다는 말이 된다.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학에 합격한 우등생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원하는 대학에 아쉽게 떨어진 학생들에게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느 대학’ 보다는 ‘대학에 간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하다. 대학 등급에 연연하지 않고 관심분야에 따라 대학을 스스로 선택한 학생들에게는 가장 큰 박수를 보낸다. 스스로의 동기부여만큼 강한 힘은 없다.
당장의 합격 불합격으로 울고 웃기에 17, 18살 학생들 앞에 놓인 미래는 너무도 창창하다. 부모들은 아쉬움과 후회를 내려놓았으면 한다. 등산도 인생도 각자 자기 속도로, 자기 길로 갈뿐이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든 정상으로 향할 수가 있다. 그러니 어느 소설가의 책 제목처럼 "괜찮다. 다 괜찮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