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스테인가튼 저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라니…
이 책은 미국의 음식 평론가 제프리 스테인가튼(Jeffrey Steingarten)이 ‘보그’(Vogue)지에 연재한 음식 평론을 한데 모은 책(The man who ate everything)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묵직한 두 권의 이 책은 이제껏 읽어 본 어떤 음식관련 서적보다도 흥미롭고 진지한 내용들로 꽉차 있다. 또한 외래어와 다른 문화권의 음식 이야기로 많은 문화적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이해가 쉽게 잘 번역한 것에도 높은 점수를 줄만 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낯선 전문 용어에는 어김없이 ‘주’를 달아 놓은 정성도 감동스럽다.
책의 저자 제프리 스테인가튼은 하버드 대학과 이 대학 법학대학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변호사로 일하다가 1989년 여성지 ‘보그’의 제의로 전업 음식 평론가로 변신한다.
20년이 넘도록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은 물론 그 권위를 인정받아 푸드네트웍의 인기 쇼‘아이언 셰프 아메리카’(Iron Chef America)의 고정 심사위원으로 출연하여 객관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평을 내는 것으로 유명해 가장 영향력 있는 심사위원으로 인기가 높다.
그는 음식 평론가의 제의를 받자 가장 먼저 특정 음식에 대한 개인적인 공포증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극복해 객관적인 평론가가 될 준비를 한다. 앤초비, 김치, 그리스 음식 등을 싫어했지만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한국의 국민 절임야채가 자신에게도 국민 절임야채가 되었다고 한다.
음식을 직접 만들기에도 매우 적극적인 그는 가능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 철저하게 연구해서 편견이나 근거 없는 상식에 치우치지 않는 가장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을 얻은 뒤 그것을 자신이 직접 실행에 옮김으로써 최종 결과를 판가름 한다. 빈틈없이 꼼꼼하고 분석적이며 정확한 변호사의 기질을 그대로 사용한 듯 중간에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다.
그는 제대로 된 자연 발효빵을 만들어 보기 위해 1m 가까이 쌓일 만큼의 자료를 모아 그것을 바탕으로 직접 빵을 만들어보고, 더 나은 결론을 얻기 위해 자신이 만든 발효종을 소중히 안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채식주의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기 위해 채식을 하며 관련 연구문헌을 찾아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몸을 연구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 결과를 확인하고 콩고기 같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그 맛을 따져보기도 한다.
맑고 깨끗하며 천상의 느낌이 나는 상상 속의 알프스 산 샘물을 찾기 위해 30개가 넘는 시판용 물을 시음하고 맛을 구분하며, 물의 배합성분을 연구해서 필요한 광물염류를 약사에게 주문하고 자신만의 물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완벽하게 튀겨진 프렌치프라이를 만들기 위해 감자의 종류와 성분을 알아보고 기름의 종류에 대해서도 연구하여 말기름으로 튀겨낸 최상의 프렌치프라이를 만들어낸다.
자신이 미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유일한 토착 소스일 것이라고 믿는 케첩을 30개가 넘는 종류를 구입하여 집에서 아내와 함께 케첩 경연대회를 열어 각각의 맛을 평가하기도 한다. 옛날식으로 직접 만드는 케첩 레서피도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인식되어 있는 소금과 설탕의 변호를 자처하는가 하면, 현대인들이 자신을 뚱뚱하게 만들고,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암에 걸리게 만든다고 믿고 있는 지방 섭취에 대한 공포를 풀어주려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무조건 몸에 좋다고 여겨지는 야채가 가진 다양한 위험요소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웨이터 학교에 등록해 7주간 교육을 받기도 했고, 정부의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한 일일 최저 생계비용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세끼를 먹고 살 수 있는지 실험하기도 한다.
식도락 기행에서는 정통 슈크르트를 맛보기 위해 알자즈로 떠나고, 일본에서는 미국에 갓 소개된 와규를 먹어 보고, 미국 바비큐의 수도인 멤피스의 경연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최고의 돼지고기 바비큐를 맛본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는 해산물 요리수업에 참석하고, 시칠리아로 날아가서는 아이스크림의 어머니라는 그라니타를 맛보고, 요리의 명인을 만나 달걀노른자만으로 만드는 지방 고유의 파스타를 배워 온다.
북아프리카의 여정에서는 또 다른 요리 전문가의 지방 가정음식의 조리법을 얻는 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하기도 한다. 식도락 기행 후 뉴욕으로 돌아 왔을 때는 항상 먹고 배운 음식을 직접 다시 만들어 보고 레서피를 정리한다.
이 책을 번역한 이용재는 “그가 이런 식도락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다른 음식 평론가들과 궤를 분명히 달리하는 것은, 글을 통해 자신의 배를 불리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 비교적 비싸고 좋은 음식에 대한 1차원적인 간접경험의 기회로만 생각하지 않고, 음식과 과학은 물론 역사를 비롯한 문화의 많은 잔가지들을 한데 아우러 글로 옮긴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한 음식 평론 모음집보다는 한 차원 높은 음식문화 비평서로 대접 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한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음식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고, 식견을 넓혀주며, 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알차고 좋은 내용을 가졌으므로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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