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한식 세계화의 초기 단계에서 ‘전통이냐, 퓨전이냐’가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다양한 많은 의견들을 종합해 봤을 때 앞으로의 나아갈 바는 확고히 ‘전통’으로 정해진 듯하다. 우리 것 ‘그대로’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 어쭙잖은 변형이나 수박 겉핥기식 흉내 내기로는 우리 음식의 독창성을 전달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한식은 건강한 재료와 양념, 발효된 조리법의 슬로푸드로 세계인들에게 건강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우리 고유의 한정식과 궁중음식은 전통 레서피 외에도 만드는 이의 정성과 바른 마음가짐이 중요하게 여겨져온 음식 이상의 문화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만들기가 쉽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손이 많이 간다는 것. 하지만 언제까지나 바비큐, 순두부, 비빔밥만 외치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이제는 셰프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진 주부들도 많은 터 그동안 엄두를 못 냈던 궁중음식에도 도전해 봄직하다.
은근하고 깊은 맛이 일품인 전골을 만들기 위해서는 육수 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LA 한인타운의 유일한 한정식 식당으로 전통 개성식 궁중음식을 오랫동안 선보여온 용수산을 찾아 일반 가정에서도 만들어 볼 수 있는 레서피를 얻었다. 용수산의 케네스 김 대표는 “우리 음식이 복잡하고 일이 많다는 선입견에 꺼려하지 말고 한번 도전해 보면 정말 즐겁고 뿌듯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좋은 재료로 마음을 담아서 요리하면 가족은 물론 외국인 손님 초대에도 더없이 좋은 메뉴이므로 우리 주부들이 바로 세계 속의 한식 전도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용수산에서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세 가지 메뉴-곱고 매끄러운 탕평채, 정성담긴 담음새가 돋보이는 구절판, 은근한 깊은 맛의 전골을 소개한다. 식당이니 만큼 소량으로 만드는 정확한 레서피가 없어 아쉽지만 그간 궁금했던 맛내기 방법, 만드는 비법 등을 상세히 들어보았다.
장기영 셰프가 말하는 궁중요리 비법 Q&A
서울 용수산에서 초빙되어 LA 용수산을 젊은 감각과 패기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 장기영 셰프는 궁중요리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고 한다. 마음가짐에 따라 음식의 맛도 변하기 때문에 술 담배도 하지 않고 마라톤으로 심신을 단련하며 요리와 맛에 ‘목숨 건다’는 그에게 평소 궁금했던 요리법을 물었다.
-궁중 음식의 기본은?
▲오방색 지키기입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몸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오방색은 흰색,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합니다. 음식에서 이런 색상을 나타내려면 보다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게 되고, 아름다운 색감을 나타내 보기 좋게 완성됩니다.
또 하나는 각 재료의 밑간 잘하기 입니다. 오늘 만들 요리에는 재료 하나하나 조리하며 마지막에 무쳐 내거나 살짝 끓여내는 방법이에요. 이럴 때는 각각의 밑간을 충실히 해두어야 완성되었을 때 각 재료의 맛이 충분히 살아나고 전체 밸런스도 쉽게 맞아집니다.
-전골의 육수 내기 비법은?
▲양지와 사골에 대파, 마늘, 생강, 통후추, 감초, 건삼 1뿌리만 사용하세요. 고기와 뼈의 핏물을 충분히 빼야 하는데, 시간이 안 되면 물이 끓을 때 고기를 넣어주면 이물질들이 거품과 함께 올라오기 때문에 제거가 쉽습니다. 끓어오른 거품 제거하고, 부재료를 넣어 중간 불로 2시간 정도 끓여주세요. 흔히 무나 양파를 넣는 경우가 많은데 넣지 마세요. 무나 양파는 수분과 단맛이 많아 깔끔한 육수 고유의 맛을 사라지게 합니다. 육수가 아니라 국같이 되어 버립니다.
-정성들여 만든 밀전병이 쫄깃하지 않은데?
▲탄력이 떨어질 때는 식용유 한 작은 술 정도나 달걀흰자를 조금 넣어보세요. 쫄깃거리는 질감은 물론이고 더 쉽고 깨끗하게 부쳐낼 수 있습니다. 부칠 때는 기름을 둘러 닦아내어 얇은 기름막을 만들어주고 부치면 됩니다. 수저로 반죽을 떠넣고 둥글려 주어 아랫면이 충분히 익은 뒤에 꼬지로 한번만 뒤집어 주세요. 부쳐낸 후 한 장씩 펼쳐놓고 한 김 식힌 후에 겹쳐놓고 랩으로 잘 싸두면 3〜4시간 후에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미리 만들어 놓을 경우 냉장 보관했다가 접시에 한 장씩 펼쳐놓고 마이크로웨이브에 살짝 데워내면 됩니다.
-청포묵 잘 쑤는 방법과 얇게 채 써는 방법은?
▲가루와 물을 섞어 약한 불에서 끓이면서 응고되기 시작할 때 저어줍니다. 10분 정도 지나면 희고 투명한 색에서 청빛이 돌기 시작하는데 이 때가 잘 됐다는 신호입니다. 청빛이 보이면 불을 완전히 줄이고 5분 정도 살살 저어주면서 뜸을 들이고 뜨거울 때 틀에 부어 1시간 정도 온실에서 식힌 후 냉장고에 넣어 완전히 굳힙니다. 단단하게 굳었을 때 칼로 포 뜨듯이 떠내어 얇게 채 썰고, 뜨거운 물에 투명해지도록 데쳐내고 면보를 깔고 위에 펼쳐놓고 물기를 제거하면 됩니다.
청포묵 포뜨기.
-달걀지단 곱게 잘 부치는 법은?
▲일단 양이 많으면 편하고, 귀찮아도 체에 한번 내려주는 것이 부쳐낼 때 훨씬 쉽습니다. 달걀 2개 이상을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서 잘 저어서 체에 걸러주면 됩니다. 지방이 많은 노른자에 비해 흰자는 단백질이 많아 매끈한 감이 떨어지는데 조금 도톰하게 부쳐내면 쉽습니다.
-볶은 오이 껍질이나 푸른 채소의 색이 바래지 않게 익히는 방법은?
▲데치거나 볶을 때 소금 간을 해주고, 익힌 후에 빨리 식히면 됩니다. 겹치지 않도록 접시에 펼쳐놓고 최대한 빨리 식힌 후에 보관하면 색이 변하지 않습니다.
-구절판의 부재료는 얇게 채 썰어야 좋은가?
▲최대한 얇게 썰어야 재료들이 어우러진 은은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기에도 고급스럽구요. 채칼을 이용하세요. 쇠고기는 부서지기 쉬운데 얼었을 때 얇게 썰어서 육수에 살짝 데쳐낸 후 볶으면 부서지지 않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데 좀 쉽게 하는 방법은?
▲재료 손질에 있어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사실이고, 그것을 줄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라는 것은 없어요. 그러나 양념이나 요리법들이 딱히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얇게 채써는 것은 채칼로 대신하고, 손님 접대용이라면 미리 조금씩 준비해 두는 게 좋겠지요.
국물도 미리 내놓고, 달걀지단이나 전 종류를 미리 부쳐두고요. 전은 부칠 때 크게 부쳐서 네모로 반듯하게 썰면 모양내기가 쉽고 사용하기 좋아요. 전골에 들어가는 전은 부쳐서 냉동해 두었다가 해동할 필요 없이 바로 사용하면 국물이 끓으면서 자연히 해동이 됩니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상에 차렸을 때 보람도 클 겁니다.
<글·사진 이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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