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한 애프터스쿨에서 다섯 살 한인 남아가 친구와 간식을 놓고 다투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욕설이 한인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최근 화제가 되었다. 이 사실은 충격을 받은 한인 교사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카운티 아동보호국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매스컴에 알려졌다.
“야, 미친 X아. 너 뒈져라.” 문제의 아이는 부모가 부부싸움 때 자주 쓰는 말을 따라했다고 증언했다. 아이는 즉각 문제 부모로부터 격리되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일상화되다시피 한 욕설로 시끄러운 ‘동방무례지국’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한 친구가 평생 들어 보지 못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체험담을 전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서울의 어느 야외 카페에서 당한 이야기였다.
그가 친지와 앉은 옆자리에서 고교생인 듯싶은 젊은 패거리가 왁자지껄 하며 담배를 심하게 피워댔다. 담배 냄새를 못 견디는 그가 참다못해 조심스레 한마디 건넸다.
“미안하지만 담배를 좀 삼가주었으면 고맙겠어요. 내가 알레르기가 심해요.”
분명히 가는 말이 고왔는데 곧 들려오는 말은 토씨 빼고는 거의 욕이었다. 주로 지읒과 쌍시옷을 써가며 저희들끼리 희희덕대며 욕을 주고받는데 어떻게 욕만 가지고도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희한한 현상은 욕설에 면역이 된 듯 인상을 쓰거나 핏대를 올리지 않고도 자연스레 욕설을 내뱉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마치 욕설의 달인들 같았다고 한다. 담배 냄새가 싫으면 자리를 뜨라는 게 그들 욕설 대화의 요지였다.
“요즘 젊은 애들 말투가 좀 탁해. 욕설 세대잖아. 잘못 건드리면 봉변이나 당해.”
그의 친지가 대수롭지 않은 듯 내뱉었다. 친구는 한바탕 욕설로 반격하고 싶은 충동을 ‘윗물이 맑아야지’ 하며 겨우 자제했다고 고백했다.
내가 대화를 나눈 한국 유학생들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의 초중고,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 세대에 광범위하게 욕설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PC 방, 인터넷 게임과 채팅,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훈련된 이들 세대는 익명성을 방패삼아 체질화한 원색적인 욕설을 거리낌 없이 술술 쏟아놓는다고 한다.
인터넷이 민주주의 요체인 대화와 토론의 장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대낮 대로에서 방뇨하듯 부끄러움도 모른 채 욕설로 주고받는 인터넷 논쟁들을 보노라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뒷걸음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이버 폭력은 간혹 악플(악의적 댓글)이 사람을 잡을 정도로 육체적 폭력보다 더 파괴적이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벌이는 사이버 논쟁 판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 곳은 원색적 욕설과 육두문자의 경연장이요, 훈련장이며 욕구불만의 하치장이다. 상대 진영에 반대 의견을 달려면 몰매 맞고 쫓겨날 각오를 해야 한다.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여기가 어딘데 X같은 새끼가 겁도 없이 감히 주둥이를 까느냐?”며 욕설을 퍼붓는다. 체면, 예의, 인격 따위의 단어는 익명이란 이름하에 실종되었다.
요즘 모임, 특히 정치판 화두는 대화와 소통이다. 진정한 소통은 유유상종하지 않고 좌와 우, 여와 야, 노와 사, 강과 약, 부와 빈, 유와 무,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등 양극 사이에 놓인 장애물을 넘어 오가는 것이다. 화이부동의 지혜가 소통의 기본철학이 되었으면 한다.
대화나 토론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기본 법칙이 있다. 첫째, 욕설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인신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주제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미주 한인단체들이 회의를 하다 걸핏하면 싸움판을 벌이는 원인도 이 기본 법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특히 성질 급한 한인들의 입에 붙은 욕설이 항상 불씨가 된다. 욕설만 삼가도 대화는 깨어지지 않는다.
누가 볼 때나 안 볼 때나 언행에 별 차이가 없는 국민이 선진국민이다. 인터넷이 대화와 소통의 훈련장으로 거듭나 욕설을 추방하고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존경받는 ‘동방예의지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주 한인들도 바른 언어생활을 통해 예의 바른 민족으로 타인종의 칭송을 들었으면 한다. 문화를 욕보여도 유분수지 욕설문화라니….
황시엽
W.A.고무 실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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